[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어떤 쇼케이스에서 사회자로 무대에 선 하루를 본 적이 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하루는 자비로 구입한 미세먼지 마스크를 당일 쇼케이스 참석자들에게 선물했다. 그러면서도 마스크를 자신이 구입한 거라는 걸 말하지 않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시작, 각종 행사를 종횡무진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루의 행보는 늘 이와 같았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지만 생색내는 데는 서툰 사람. 인간미 나는 MC 하루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이 때문이다.

-부산에서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원래 집이 부산이다. 아내가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그곳에 신혼집을 두고 서울에 작은 원룸을 하나 얻어둔 상태다. 생활의 3분의 1 정도를 서울에서 하고 있다."

-어떻게 하다 MC의 길을 걷게 됐는지 궁금하다.

"가정형편이 안좋았다. 학원에 안 다녔는데도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공고나 상고를 가라고 했다. '너를 대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니 공고나 상고를 졸업해서 바로 취업하라'는 말이었다. 그 때부터 독립심이 생겼다고 해야 되나.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배달 일도 하고 그러면서 한 달에 6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 돈으로 생활비를 하고 학비를 모아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계속 장래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하지 않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길이 뭘까를 계속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오락부장을 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그런 자리를 좋아했다. 수학여행 같은 데 가면 레크리에이션 해 주는 강사가 있잖나. 그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생기는 거다. 그래서 레크리에이션을 배우기로 했다."

-막상 원하는 길에 들어오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기도 하잖나.

"처음에는 내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고, 무작정 달려들었을 때는 무조건 잘할 줄 알았다. 나름대로 동네 '인싸'(insider 인사이더의 줄임말, 유행을 잘 따르고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사람들을 일컬음)였으니까. (웃음) 근데 사람들을 단순히 재미있게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 MC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고 행사장의 안전도 챙겨야 하고 재미도 줘야 한다. 그냥 나랑 몇 명만 재밌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야 하기도 하고. 그런 게 처음에는 힘들었다."

-쇼케이스 등 엔터계 MC는 어떻게 하게 됐나.

"2010년도에 스타제국의 모든 직원과 아티스트들이 부산에서 행사를 했다. 그 때 부산에서 행사를 봐 줄 사람을 찾다가 나와 연락이 닿게 된 거다. 그 때 처음으로 엔터계 행사 사회를 봤다. 이후 한 7~8년 정도 행사를 다니다가 양산에서 하는 '청소년 페스티벌' MC로 가게 됐다. 그 때 뮤직K의 안정훈 프로듀서가 심사위원으로 왔다가 나를 본 거다. '우리가 준비하는 밴드가 있는데 스쿨어택이나 그런 자리에서 사회를 봐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밴드가 아이즈다. 그렇게 이쪽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직업이 잘 맞는 것 같나.

"내가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들어주는 것도 잘하고. 그래서 이 일과 잘 맞는 것 같다. 특히 쇼케이스 같은 경우에는 워낙 장비도 잘 갖춰져 있고 돌발상황도 많지 않은 편이라 감사한 행사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루는 대학교 행사에 갔는데 50분인가가 빈다면서 나보고 50분을 채우라고 했다. 솔직히 5분, 10분도 아니고 50분은 혼자 채우기가 힘들잖나. 그래서 그 날은 그냥 돈 안 번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게임을 하자고 했다. 1등을 한 학과에 치킨 열 마리를 쏘겠다고 제안을 했다. 물론 행사 주최측에서 돈을 지원받은 건 아니었다. 내 사비라는 걸 티내고 싶어서 무대 위에서 스피커폰으로 치킨 주문을 하고, 무대 위로 치킨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배달 오토바이가 들어왔는데 학생들이 가운데 오토바이가 들어올 길을 쫙 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K팝 스타들 쇼케이스의 경우에는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게 있나.

"쇼케이스는 공부를 진짜 많이 해야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K팝 쇼케이스 행사를 본 게 작년부터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가 이름을 외운 그룹, 멤버 이름이 100명이 넘더라. 이름을 제대로 아는 건 아티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본다. 근데 그게 생각보다 정말 어렵다. 사진 보고 외웠는데 실제로 만났을 때 매칭을 못 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은 팀은 그 영상들을 보고 그게 없는 팀은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을 계속 본다. 그 다음에 신곡을 전달받으면 최소한 200번에서 300번, 많게는 1000번까지 듣는다. 노래를 들어도 잘 안 들어오면 모텔방 같은 걸 잡고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를 돌려 볼 때도 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나.

"아티스트에 대해 알고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쇼케이스는 그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자리잖나.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서면으로 된 자료만 보고 대본만 외우면 내가 무대에서 하는 일이 안내방송 하는 것밖에 더 되겠나."

-그래도 수 백번까지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들을 것까지 있을까.

"사회자 일을 하다 보니 물론 요령이 생기기도 한다. 근데 아직은 요령피우기 싫다. 워낙에 이쪽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분들이 많고 아나운서 분들도 사회를 많이 본다. 내가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건 준비성과 아티스트에 대해 하나라도 더 많이 안다는 점이라고 본다. 좋게 말하면 노하우인데, 그런 요령은 나중에 피우고 싶다."

-행사 MC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힘든 직업이다. 아무리 잘해도 박수를 받기 쉽지 않다. 사실 20대 때 나는 주목을 받고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있으면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내게 와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행사의 주객이 전도되더라. MC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생각을 하는 건 행사의 기획의도를 무시하는 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하지 말란는 말을 하고 싶다."

-어떤 MC가 되고 싶나.

"내가 어떤 쇼케이스를 했는데 참석자들이 그 스타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매력을 느꼈다는 말을 하면 사회를 잘본 거라고 생각한다. 편하고 빠른 길을 가기 보다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진=제이지스타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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