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기생충’은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칸 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900만 관객 돌파를 앞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해외 유수 영화제의 러브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내년 열리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부문 수상 유력 후보로 꼽힌다. 국내외적으로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 부자 가족의 만남을 통해 계급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풍자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 ‘설국열차’와 ‘옥자’에 이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내용을 담았는데.

“혹자는 ‘기생충’까지 자본주의 3부작이라고 하더라.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국열차’와 ‘옥자’는 SF적인 설정이 있다. 반면 ‘기생충’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자본, 시스템이라는 사회과학적인 용어를 붙이기 꺼려진다. 빈자와 부자는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는 사람들이다. 가난함과 부유함 사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없는 선에 갔을 때 발생하는 파국의 에너지를 담고 싶었다.”

-기택(송강호)과 박 사장(이선균)은 극과 극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이다. 두 가족을 어떻게 구상하고자 했나.

“너무 전형적이지 않았으면 했다.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탐욕스러운 부자가 아니길 바랐다. 사실 요즘 시대 자체가 영화 속 선과 악 구도처럼 쉽게 구분이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인물들의 미세한 층을 만들고 싶었다.”

-기택의 장남 기우(최우식)의 역할이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와 함께 작업했던 ‘옥자’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인’을 봤는데 연기를 참 잘하기도 했다. 뭔가 곱게 자란 것 같으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캐릭터도 잘 어울린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안쓰러운 느낌이 있다. 결핍이 있다고 해야 할까. 배우들이 꽉 찬 느낌이라면 드라마적인 재미가 없다.”

-후반부 반전을 책임지는 근세 역을 맡은 박명훈의 연기는 그야말로 기이했다.

“가장 어려운 캐스팅이 근세 역이었다. 지하실에서 살던 인간 아닌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신체 이미지도 있었다. 멀쩡한 사람인데 귀신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니 연기도 잘해야 하지만 이미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명훈의 ‘재꽃’을 봤는데 ‘술 취한 연기를 저렇게 잘 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참 다양했다.”

- ‘기생충’의 결말은 영화의 씁쓸함을 더하는데.

“꼭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무너졌을 때 어떤 비극까지 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기택의 범죄는 우발적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항상 사건의 결과만 본다. 사실 그 사건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미묘한 맥락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서도 기택의 변해가는 모습, 기택이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탄 연교(조여정)가 코를 막을 때 기택의 표정이 그 예다. 결국 그 순간에 우리는 미묘한 느낌을 체감하게 된다. 그게 바로 비극의 해부라고 생각한다. 박 사장의 최후 역시 마찬가지고.”

-송강호와 어느 덧 네 번째 협업을 했다. 꼭 송강호여야 하는 이유가 있나.

“감독만의 유치한 질투심이 있다. 나와 네 편을 함께 했지만 중간 중간 다른 감독님들과도 작업을 했다. 그걸 보면서 항상 ‘저 배우의 최고작은 나랑 한 작품이었으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 감독의 최고작이 내가 출연한 작품이었으면’하는 마음이 있다. 송강호의 최고작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최고작이 이제 ‘기생충’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건 관객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지만.”

-문광(이정은)과 근세 부부는 갑자기 종북 개그를 한다. 의미가 있나.

“남궁현자 선생이 지은 박 사장네 집 지하실이 북한과 관련이 있어서 나온 것일 뿐이다. 북한이 쳐들어오면 숨을 곳이니까 ‘북한 덕에 우리가 여기서 사네’라는 자조적 유머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걸 이정은이 잘 살려줬다. 그런 맥락일 뿐 조롱의 의도는 없었다.”

-칸 영화제 수상작임에도 ‘난해하지 않다’는 평이 많다. 상업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맞추기 힘들었을 텐데.

“균형을 맞춘다는 건 결국 저울질 하는 걸 의미한다. 그렇게 접근은 못 한다. 어쩌면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뿐이다. 명쾌하지만 위험한 논리일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재미있나?’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 감독이기 전에 영화광이라서 그런 것 같다. 덕후라 어쩔 수 없다. (웃음)”

-차기작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다.

“두 가지 작품이 있다. 미국영화는 현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2000~2500만 불 규모다. 준비 중인 한국영화는 공포 장르는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의 사이즈를 기준으로 얘기하면 사실 좀 민망하지만 ‘마더’나 ‘기생충’ 규모의 작품이 내 몸에 맞는 느낌이다. 돈 자체가 아니라 영화의 사이즈를 봤을 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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