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파기환송심 11월 넘기면 경영일선 복귀 못할 수도
작량감경 가능성 높을 것으로 예상 “정상참작 바랄 뿐”
위기에 놓인 삼성전자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창권 기자] 최근 글로벌 악재 속에서 현장경영을 이어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금 재판을 받게 되면서 삼성그룹이 진행해오던 현안들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판 일정에 따라 심문기일이 잡혀 출석할 경우 사전에 약속된 글로벌 기업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경영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삼성전자가 비상경영 체제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이유라 할 수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반도체 필수 소재 확보를 위해 해외 업체를 통한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부회장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본격화 된 지난 7월 반도체 소재 확보를 위해 일본 출장을 다녀온 데 이어 지난달 6일 삼성전자 충남 온양사업장, 천안사업장을 시작으로 9일 경기도 평택사업장, 20일 광주사업장, 26일 삼성디스플레이 충남 아산사업장 등을 잇달아 방문해 직접 현장을 둘러보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수장인 이 부회장이 재판을 앞두게 되면서 글로벌 활동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 일정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업체와의 미팅이나 현안을 직접 챙기기 어렵고 재판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는 만큼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에 따라 글로벌 소재확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이재용 부회장의 노력도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총수가 직접 나서 소재를 구하면 의지의 여부에 따라 어느 정도 가격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구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에 빠졌다.

그동안 법정 공방 탓에 3년여 시간을 허송세월 하면서 삼성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이렇다할 준비를 못해 왔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전 경영진이 비상경영을 펼치고 있지만 대내외 악재는 삼성을 더욱 곤혹하게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8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과 올해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투자 계획, 글로벌 AI 센터 설립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미래투자가 구심점을 잃어 자칫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재계에서 국내 산업전체를 이끌고 있는 삼성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삼성그룹의 경영상 불확실성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금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 갈등,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등 대내외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으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앞장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보다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경총은 또 “삼성그룹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행정적 배려를 부탁드린다“고 요구했다.

그동안 목소리를 아껴왔던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통해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이번 판결로 인한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한국경제에 크나큰 악영향을 더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만큼 향후 사법부는 이러한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삼성의 위기가 곧 국가경제의 위기임을 기업인들이 인식하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읽힌다.

KB증권은 대법원 판결 이후 보고서를 통해 이 부회장이 앞으로 진행될 파기환송심에 따른 부담으로 적극적인 경영 행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동원·김준섭·이남석·이태영 연구원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는 오너 리스크 부각으로 해외 대형 인수합병(M&A) 같은 핵심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며 “지배구조 등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는 신뢰 회복 방안도 늦춰질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들은 “2012년 이후 매출 증가가 둔화한 삼성전자는 오너 중심의 중장기 사업 전략 수립과 해외 대형 M&A 등 향후 성장을 모색하려고 한 계획에 다소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출장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11월 시행 특경법 탓에 복귀어려워질 수도

이 부회장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파기환송심이 법정 다툼으로 번져 확정판결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지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오는 11월 8일부터 시행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령안에 따르면 5억원 이상 규모 횡령·배임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기업인은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특정 기간 피해기업으로 복귀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파기환송심의 경우 대법원의 법률상·사실상 판단에 구속되는 만큼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지 않는 이상 대법원 취지대로 사건이 끝나게 된다.

대법원 판결 이후 위기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실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거론되는 부분은 ‘작량감경’이다. 작량감경은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 법관의 재량으로 최대 절반까지 형을 감경해줄 수 있는 제도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횡령금액은 86여억원으로 뇌물 금액이 50억을 넘어가는 경우에 형량이 5년 이상이다. 그러나 법정형이 5년 이상이더라도 작량감경을 받으면 2년 6개월로 줄어드는 만큼 선고형은 여전히 3년 미만으로 떨어져 집행유예를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부실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해 그룹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모두 실형을 선고 받았다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역시 작량감경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실형을 1년여 살았을 뿐만 아니라 횡령 혐의를 받은 금액 전액을 변제했고, 국익을 위해 ‘민간 외교관’을 자청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점과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는 점이 참작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파기환송심에서 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할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삼성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큰 만큼 법원에서도 이를 참작해 주길 바랄뿐이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2심에서 뇌물이 아니라고 본 정유라씨 말 구입액 34여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여억원을 뇌물로 봤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에 건넨 뇌물액과 횡령액이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이 있었다고 판단하면서 추후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되면 법정 구속을 피할 수 없어 경영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상고심에서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최씨에게 말에 대한 처분권한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히며 영재센터 지원금도 "삼성에 경영권 승계작업 현안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김창권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