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배우 조진웅은 한 때는 무명이었다. 10여 년 전만해도 단역생활을 전전하던 처지였고, 중요한 배역을 맡아도 3만 관객이 채 못 들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렇다 할 책임감은 별로 없었다. 지금은 유명인이다.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그만큼 흥행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조진웅은 “예술에는 관객이 필요하다. 관객이 없으면 배우 할 필요 없다. 우리 집에 아주 값비싼 예술 작품이 있는데 혼자 보면 누가 알아주겠나.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관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영화 ‘아가씨’에 이어 ‘사냥’이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아 선택했다. 시나리오를 안 봐도 사람이 좋으면 일단 하고 싶다. ‘끝까지 간다’ 제작진이 좋았던 게 아니라 그 팀 사람들이 좋았다.”

-시나리오는 너무 좋은데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면.
“지금까지 작업한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 그런 적 없었다. 예전에 작업할 때 ‘절대 안 본다’ 선언할 정도로 다툰 두 남자가 있었는데 내가 화해시켰다. 두 손을 맞잡게 하고 눈을 마주보게 했다. 1분도 채 안 됐는데 눈물을 흘렸다. 이 방법은 백이면 백 먹힌다.”

-부부싸움 할 일도 없겠다.
“부부 사이는 조금 다르다.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가벼운 대화 한 번에 쓱 풀어진다. 이래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구나 싶다.”

-드라마 ‘시그널’ 때문에 이혼당할 뻔 했다는 일화가 있다.
“시나리오도 안 봤다.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감독이 자꾸 전화하고 집까지 찾아와 만나며 하게 됐다. 그때 아내가 하와이 여행 예약 중이었는데 작품한다고 말하기가 정말 미안했다.”

-드라마 이후 치솟은 인기에 질투는 없었나.
“극중 내 모습을 보고 질투하더라. ‘너는 김혜수를 진짜로 쳐다보냐’고. 내가 언제는 가짜로 사람 봤나(웃음). 김혜수 선배가 정말 도움을 많이 줬다. 우리 부부 초대해서 거나한 식사도 대접해줬다. 후배 부부한테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멋진 선배의 느낌을 받았다.”

-본인은 후배들한테 어떤 선배인가.
“요즘 예쁜 후배들 정말 많다. 단지 내가 후배들하고 안 친하고 안 좋아한다. 누구만 예뻐할 수 없어서 그냥 다 공평하게 안 좋아한다. 예쁜 후배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내 와이프다.”

-이런 사랑꾼 면모에 여성들이 더 열광하나.
“이런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 팬들은 나의 가장 큰 힘이다. 무게감도 느낀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 없었는데. 그렇다고 내 연기관이나 정체성이 흔들리는 건 아니다. 팬들에게 고맙다는 말 정말 하고 싶다.”

-무게감에는 흥행 부담감도 포함되나.
“예술에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 관객이 없는데 연기를 왜 하겠나.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우리집 창고에 나만 아는 최고의 미술작품이 있으면 뭐하나 아무도 모르는데.”

-다작의 이유는 뭔가.
“요새 나오는 시나리오는 모두 재미있다. 또 나는 촬영장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아가씨’ 때는 서재 공간이 좋았고, ‘사냥’에선 산이 묘했다. 이건 다들 모르는 기분일 걸.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연기하면 좋겠다.”

-배우가 좋은 이유는.
“연기는 철학과 같다.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직업을 이미 갖고 있는 셈이다.”

-차기작 드라마 ‘안투라지 코리아’가 정말 기대된다.
“이 분야에서 내가 들었던 이야기와 느꼈던 것들이 모두 다 들어있다. 요리하는 사람이 레시피를 공개하는 기분이랄까. 무엇보다 대사가 정말 많다. 그냥 기분이 좋다고 하면 될 것을 비유를 거쳐 길게 말한다.”

-맨 처음 이 일 시작하면서 잡은 목표는 이뤘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사인 끝에 ‘꿈’이라고 적는다. ‘꿈을 꿉시다’의 줄임말인데 꿈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동기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지금 본인은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재미있는 위치? 나는 작품하는 게 재미있다. 이성민 선배랑 자동차 광고를 찍었는데 ‘우리 잘 가고 있는 거 맞지’라는 대사를 한다. 그 대사에 울컥했다. 10년 전 같이 ‘칠렐레 팔렐레’ 돌아다니며 단역하던 시절 만난 사이인데 다시 만날 줄이야. 영화 ‘보안관’도 같이 찍고 있는데 느낌이 오묘하다. 우리 모두 잘 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황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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