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방탄소년단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지만, 사회에 남아 있는 관성은 끝내 이들을 오롯이 품지 못 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차별과 치우친 생각을 보여준 시대가 유감스럽다.

21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리 '제 94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국방부가 대중 연예인에게 체육·예술분야 대체복무 혜택을 주지 않는 현행 병역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의 눈이 쏠렸던 방탄소년단의 입대 문제에 대해서도 결과가 나왔다. 특례 없이 입대해야 한다.

K팝 그룹 최초로 빌보드 메인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오른 이 그룹의 성과와 경제적 효과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이제 와서 이를 언급하는 것조차도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특히 한국에 일으키는 사회·경제·문화적 효과는 상당하다.

국방부의 설명은 이렇다. 전통 음악은 콩쿠르 대회와 같은 객관적인 기준이 있지만 대중음악은 비교 기준이 부족하다는 것. 대중음악에 병역 특례의 문을 열면 '영화는 왜 안 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체복무를 한없이 확장해야 한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올림픽이나 국제 콩쿠르와 같은 세계인이 함께하는 지표가 대중음악에 있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은 인정한다. 병역 특례의 문을 대중문화 영역까지 열면 국방부 말마따나 "그럼 어디까지 확장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본래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당연히 어렵지 어떻게 쉽겠는가. 그런데 쉽지 않다는 게 하지 말아야 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대중문화계에도 명백히 국제 콩쿠르와 같은 시상식이 있다. '아카데미 어워즈', '칸 영화제', '그래미 어워즈', '빌보드 어워즈' 등 올림픽, 월드컵에 비견될 만한 전 세계 대중문화인이 경합을 벌이는 시상식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떤 시상식까지를, 또 어떤 수상까지를 병역 특례로 인정하는지를 논의하는 게 정말 불가능한 일인 걸까. 혹은 대중문화를 클래식이나 스포츠보다 낮게 취급하는 어떤 '딴따라 무시 정신' 같은 것이 이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애당초 '국위선양'과 '문화창달'을 위한 엘리트 육성을 명분으로 가진 예술·체육 특기자에 대한 병역 특례 역시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지 않았던가.

지난 해 '그래미 어워즈'에 시상자로 참가한 방탄소년단.

이 같은 사회적 관성은 이 날 방탄소년단을 두 번이나 울렸다. 국방부의 입장 발표가 있기 전 '제 62회 그래미 어워즈'가 방탄소년단을 후보 명단에서 제외했다. 미국인이 아닌 뮤지션이 발표한 비 영어 앨범이 빌보드 200에서 1년 내에 세 번이나 1위를 차지한 건 방탄소년단이 최초다. 여기에 K팝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러브 유어셀프 결(結) '앤서''가 빌보드 200에 1년 동안 차트인 하는데도 성공하면서 방탄소년단은 신드롬급 인기를 입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62회 그래미 어워즈'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주요 부문을 비롯해 베스트 뉴 아티스트,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 어느 곳에서도 방탄소년단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충격적인 결과에 외신들도 반발했다. 롤링스톤지는 "지난 1년 간 미국의 주요 음반 회사들이 K팝을 홍보하기 위해 분투했다. 방탄소년단이 K팝의 미국 진출을 계속 이끌고 있다. 보수적이고 경쟁이 치열한 라디오 세계도 잡았다. 그럼에도 '그래미 어워즈' 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인정과 달리 '그래미'는 늘 그랬듯 뒤쳐져 있다"고 비판했다. CNN 역시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래미 어워즈'는 오랜 시간 동안 그 보수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제이지, 켄드릭 라마, 비욘세, 카니예 웨스트 등 평단과 대중의 인정을 모두 받은 뮤지션들을 자주 빈손으로 돌려보냈고, 일렉트로닉 장르를 무시하며 '인종 차별', '보수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아리아나 그란데, 켄드릭 라마, 차일디쉬 감비노 등 많은 팝스타들이 지난 해 '그래미 어워즈'에 불참했다.

지난 해 '그래미 어워즈'는 이 같은 비판을 수용한 듯 사뭇 달라진 면을 보였다. 미국 사회의 상처와 모순을 고발하는 노래 '디스 이즈 아메리카'가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고, 이 노래가 포함된 앨범이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그래미 어워즈'에 불참한 아프리칸-아메리칸 아티스트인 차일디쉬 감비노였다. 이 외에도 내전과 인종청소의 아픔을 지닌 코소보 출신의 두아 리파가 신인상을, 여러 차례 '그래미 어워즈'에서 물을 먹은 드레이크가 '갓스 플랜'으로 베스트 랩송 상을 받았다. 방탄소년단은 이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베스트 R&B상을 시상했다.

시상자로 오른 방탄소년단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후 방탄소년단은 눈부신 성취를 이루며 이 말을 지킬 듯 보였다. 하지만 끝내 '그래미 어워즈'는 아시안에게 문을 열지 않았고, '보수성'을 유지했다. 방탄소년단이 돌아올 자리는 '그래미 어워즈'에 애초부터 없었던 셈이다.

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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