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연말을 맞아 한 해 동안 다양하게 활약한 가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한 해를 즐겁게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방송사의 연말 가요 프로그램들. 과연 이들이 기획 의도를 잘 살리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커졌다. '가요대전', '가요대제전', '가요대축제' 등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비슷한 라인업에 비슷한 구성의 반복으로 각 방송사마다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부터 리허설, 안전 대책 등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출연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비판까지 방송사들의 연말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 안전 장치·리허설 부재… 피해는 오롯이 출연자 몫?

이번 년도 연말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킨 건 SBS '2019 가요대전'이다. '2019 가요대전'에 출연한 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웬디는 25일 리허설을 진행하다 2.5m 가량 되는 높이의 무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문제는 이 현장에 제대로 된 안전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26일 연예 매체 디스패치는 웬디가 대본대로 2층 터널에 올라갔다 노래에 맞춰 계단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는데 리프트가 올라오지 않아 중심을 잃고 무대 아래로 떨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어두운 곳에서 출연진이 움직일 때는 동선 파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마킹 테이프를 붙여 두지만 당시엔 마킹 테이프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출연진이 함께하는 무대인 만큼 안전에 더욱 신경써야 했지만 마킹 테이프라는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던 데 대해 대중의 분노는 컸다. 여기에 레드벨벳은 막 신보를 발매하고 컴백한 상태였기에 웬디의 부상은 그룹 활동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

웬디.

그럼에도 SBS의 태도는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 역부족이었다. 웬디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은 팬들 사이에서 금방 퍼져나갔지만 SBS 측은 '2019 가요대전'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만 두 차례에 걸쳐 웬디가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얼굴에 부상을 입고 손목, 골반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고 알렸을 뿐이다. '2019 가요대전' 방송이 시작되고 나서야 SBS의 공식 입장이 나왔는데, 여기에도 사고의 배경이나 당사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무대를 보여드리지 못 해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죄송하다는 게 고작이었다.

방송사의 이런 미흡한 준비는 KBS의 '2019 가요대축제'에서도 드러났다. 27일 진행된 '2019 가요대축제'에서 에이핑크는 '응응'으로 무대를 꾸미고 있었다. 노래가 잠시 멈추고 멤버들이 댄스 브레이크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방송 화면이 다른 장면으로 전환됐다. 이 탓에 에이핑크는 준비한 무대를 마무리하지 못 하고 도중에 퇴장해야 했다.

에이핑크 멤버들은 이후 SNS 및 온라인 방송을 통해 이 날 있었던 방송사고에 대해 유감을 보였다. 손나은은 "모든 가수가 열심히 준비한 무대 앞으로는 안전하게, 공평하게,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고, 정은지는 "모든 아티스트 분들의 무대가 늘 존중 받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에이핑크가 주최 측의 사정으로 리허설을 하지 못 한 채 본 방송에 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단순히 인기를 척도로 무대 시간을 차등해 배분하고, 그나마 부여 받은 한 곡조차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 하게 한 것이 공정하지 못 한 처사라는 비판도 있었다.

'2019 KBS 가요대축제' 포토월에 선 에이핑크.

결국 '2019 가요대축제' 권용택 책임 PD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했다. 권 DP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팬들을 위해 밤납없이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 우리의 실수로 빛이 바래진 데 대해 멤버들과 팬들의 다친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멋진 무대를 위해 애쓴 에이핑크의 스태프들에게도 사과드린다"며 "카메라 리허설 도중 천장에 매단 영상 장치에 문제가 생겨 리허설이 한 시간 이상 지체됐다. 무대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입장개시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공연운영팀의 요청에 따라 제작 책임자로서 일부 카메라 리허설을 생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에이핑크의 무대는 생방송에서 벌어진 제작진의 단순 실수이긴 했지만 더 철저하게 준비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제작 과정의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해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 협조적인 소속사만 섭외? 의미 바랜 연말 축제

MBC의 연말 가요 프로그램인 '2019 가요대제전'은 방송 전부터 '갑질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갑질 논란'의 골자는 MBC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차별이다. 앞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인 그룹 방탄소년단은 미국 ABC 방송의 신년 전야 특집 프로그램인 '딕 클락스 뉴 이어스 로킹 이브' 출연으로 인해 '2019 가요대제전'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후 공개된 '2019 가요대제전' 라인업에는 방탄소년단과 같은 소속사 후배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같은 계열의 레이블 소속인 그룹 여자친구가 빠져 있었다.

여자친구는 올해 무려 두 번이나 컴백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2019 가요대제전'을 제외한 SBS, KBS의 연말 가요 프로그램에는 모두 참석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역시 연말 가요 시상식의 신인상을 독식하며 '괴물 신인'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았다. 때문에 이런 두 그룹이 '2019 가요대제전'에 이름을 올리지 못 한 건 방탄소년단의 불참에 대한 MBC의 보복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MBC 측은 이 같은 논란이 일자 갑질은 아니라는 입장을 냈다. 출연자 캐스팅은 PD의 고유 권한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방탄소년단이 '2019 가요대제전' 불참 의사를 전달한 뒤 같은 회사 가수들의 MBC 출연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MBC가 '갑질 논란'이란 오명을 벗길 원한다면 '2019 가요대제전' 라인업 구성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기 있는 아이돌 스타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한 천편일률적인 캐스팅과 무대 구성, 오로지 인기만 지표로 삼은 듯한 무대 시간 배분 등으로 연말 가요 시상식, 페스티벌 등은 꾸준히 대중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음악 프로그램 외에 K팝 스타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제대로 갖추지 못 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왜 아이돌 스타들을 모아두고 연말 가요 프로그램을 꾸리는지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평소엔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 정도로만 취급하다 연말만 되면 갑자기 K팝에 지대한 공헌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인기 스타들을 끌어 모으는 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웬디의 부상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SBS를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에이핑크의 무대가 잘린 뒤 SNS에서는 관련 검색어들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에이핑크, 가요대축제, 응응 등이 오랜 시간 상위권에 머물렀다. 연말 가요프로그램들은 "존재해야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방송사 3사가 통합해서 한 번만 하면 안 되느냐"는 대중의 꾸준한 문제제기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 하고 또 한 번 논란만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의 아이돌 동원 능력을 자축하는 것 같은 연말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인내심은 점차 바닥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사진=SBS, KBS, MBC 연말 가요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한국스포츠경제 DB, OSEN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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