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판타자이에 가입했다. 최근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양준일의 팬카페다.

간단한 가입 질문에 답하고 준회원이 됐다. 준회원의 이름은 '아가씨'다. 아마 양준일의 노래 '댄스 위드 미 아가씨'에서 따온 듯하다. 내 생애 누군가의 팬 카페에 가입한 건 2000년대 초 H.O.T. 짱 카페 이후 처음이다.

원인이 된 건 지난 해 마지막 날 열린 팬미팅이었다. 일로서 기자회견에 참석했고, 일로 팬미팅을 봤다. 처음부터 팬심으로 행사장에 향했던 건 아닌 셈이다.

일과 사적인 감정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건 기자회견 중반 즈음이었다. '예전에 미처 알아봐 주지 못 해서 양준일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팬들이 많다'는 한 기자의 말에 양준일은 이렇게 답했다.

"팬 분들이 제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런 면에선 저도 똑같이 미안해요.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또 당시 저를 걱정하던 팬들이 있는지도 몰랐던 것도 미안하고요. (한국에서 활동하며)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고 그런 것들을 통과하면서 얻은 게 굉장히 많아요. 한 순간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전에 '내 머릿 속에 있는 쓰레기들을 많이 버려야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쓰레기 안에는 굉장히 소중한 보석들이 있어요. 그 보석을 찾아내서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베이스로 인생을 살아간 것이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저를 환영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자체로 옛날의 그런 나쁜 기억들이 다 녹고 있어요."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10년 가까이 기자 일을 하며 기자회견에서 눈물이 떨어진 건 처음이었다. '그래, 분명 인생에는 소중한 보석들이 있는데…' 갑자기 그런 깨달음이 밀려왔다. 어느 순간 일에서도 삶 전반에서도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에 메여 살아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로부터 크게 배려 받았고, 크게 사랑 받았고, 일을 하며 얻은 것도 기뻤던 일도 많았는데 그런 모든 기억들을 찰나의 순간으로만 취급하고 넘겨버렸던 게 아닐지. 새삼 고마웠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라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양준일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교포라는 이유로 무작정 나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사람들 틈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더라면, 결국 꿈을 이루지 못 하고 쫓겨나듯 떠나야 했더라면, 그래도 양준일처럼 소중한 기억들이 많았노라고 감사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럴 줄 아는 사람이 됐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왜 양준일의 이야기를 들으면 빠지고 마는지, 왜 그가 이토록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됐는지를 진심으로 실감하게 됐다.

12월 31일 근무의 고단함을 완전히 잊게 만든 건 그 이후다. '리베카'로 팬미팅의 시작을 연 양준일은 한 동안 무대를 뜨지 못 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 채 객석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땀을 닦으러 내려가는 잠깐의 시간도 아까운 듯 "여러분 곁에 있고 싶다"고 했고, 또 "여러분의 사랑이 파도처럼 날 때린다"고, "숨을 쉬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그와 함께 또 큰 위안을 준 건 현장을 찾은 팬들이었다. 공연 시작 5분 여를 앞두고 입장해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 틈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누구 하나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40대 여성은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라이트펜은 구입했는지 응원에 필요한 현수막은 받았는지 물었다. 본래 그 날 근무였다는 그 팬은 1월 1일로 근무 스케줄을 조정하고 전주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런 번거로움 내지 고단한 여정을 감수하게 한 건 양준일의 심성이라고 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을 보고 양준일에 대해 알게 됐다는 그는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어디 있나 싶다. 왜 미처 알아 보지 못 했는지 모르겠다. 저 분은 존재하는 한 끝까지 함께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팬미팅의 사회를 본 김이나부터 현장에 모인 다수의 팬들은 하나같이 양준일의 심성을 칭찬했다. 마치 구김살이라곤 없었던 인생처럼 티없이 웃고 어떤 질문에도 진심을 다해 대답하는 태도. 생각의 깊이가 헤아려지는 양준일의 말들은 단순히 50여 년 인생 경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역시 상처를 받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맞긴 한가보다 싶었고, 대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또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했기에 저토록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가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단순히 레트로 붐에 탑승한 게 아니다. 양준일이 좋은 건 그가 요즘 핫해서라거나 그의 스타일이 멋져서가 아니라 양준일이 양준일 같은 사람이어서다. 그리고 기어이 팬 카페에까지 가입한 건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닮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엔 고통도 많지만 따뜻한 마음도 많고, 선한 사람이 반칙 없이 성공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양준일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주저없이 같은 그룹으로 묶여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자라는 직업부터 나이, 성별, 취미 등 나 자신을 수식하는 여러 수식어들 사이에 이렇게 '판타자이' 하나를 더 새겨넣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 수식어와 함께하고 싶다.

사진=임민환 기자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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