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배우 이범수가 올해도 악역을 선보였다. 2014년 영화 ‘신의 한수’의 살수, 2015년 드라마 ‘라스트’의 흥삼에 이어 2016년엔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북한군 림계진이다. 다 같은 악역이지만 이범수가 맡으면 달라진다. 살수는 날렵하면서도 창백한 인물이라면 림계진은 기름지고 능글맞은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범수에겐 뻔한 캐릭터를 살려내는 데뷔 27년차의 만만치 않은 내공이 있다.

-입금 전후가 다른 고무줄 몸무게다.
“영화 찍으면서 7kg을 찌웠다. 처음 시나리오에 나온 림계진이라는 인물은 고뇌하는 사상가였다. 그러다보니 이정재가 연기한 장학수 캐릭터와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림계진을 수정 보완하자는 의견들이 나왔고, 결론적으로 체중을 늘려 기름지게 만들었다.”

-살은 어떻게 찌우고, 어떻게 빼나.
“골고루 닥치는 대로 먹으면 찐다. 역시 국물 있는 음식들이 생각나서 많이 먹었다. 살을 뺄 때는 굉장히 고생했다. 촬영 끝나고 덜 먹으려니 애를 많이 먹었다.”

-악역 선택의 기준이 따로 있을까.
“처음 악역이 주어졌을 땐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여러 번 하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될 수 있으면 안 했던 걸 찾게 되고, 안 겹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악역 할 땐 악역이 조금 많이 들어오고, 코미디 한 번 하면 또 코믹캐릭터 위주로 들어온다.”

-영화에서 힘을 준 장면이 있다면.
“나름 고도의 플레이를 하는 림계진이고 싶었다. 바에서 부하의 전화를 받고 속내를 숨기는 장면이 생각난다. 전화를 받고 와서 허허실실 말하면서 부하들과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이 더 있었는데 편집됐다.”

-미국 개봉 때 더 추가된 장면이 있을까.
“오는 12일 미국에서 개봉한다더라. 리암니슨이 연기한 맥아더 분량이 조금 많지 않을까 기대한다. 또 장교클럽에서 대치하는 부분이나 탱크를 타고 흙더미에서 나오는 부분 등 디렉터스 컷으로 빠진 내용이 꽤 있다.”

-극중 림계진의 북한 사투리가 세더라.
“북한군 사투리를 정말 잘 하고 싶었다. 제작진한테 부탁해 북한군 출신의 탈북자 분으로 섭외를 받아 일주일에 서너 번씩 공부했다. 이질적인 느낌을 주려고 흔한 평안도 사투리가 아닌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변두리의 투박함을 나름 살렸다.”

-원조 북한 한류의 주인공 아니냐.
“하하. 드라마 ‘자이언트’ 끝내고 기사가 났더라. 북한 남자 인기순위 1위라고 해서 놀랐다. 통일이 돼도 굶어 죽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투리 선생님이 알려주셨는데 북한에서 한국 방송 많이 본다더라. 99.9%는 안테나를 설치해두고 있는데, 단속 뜨면 모르쇠로 일관한다 들었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하셨는데 극중 북한군을 맡은 기분은 어떤가.
“생전 아버지께 전쟁 이야기 들을 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영화 찍으니 이렇게 슬픈 비극일 줄이야. 아버지가 영화 보시면 어떤 말 하셨을까 궁금하다. 인민군 한다고 탐탁지 않아 하실지 아니면 칭찬해주실지 모르겠다.”

-이정재와의 세 번째 호흡은 어땠나.
“장르가 달라서 기대됐고 역시나 재미있었다. ‘오 브라더스’에선 형제였는데 이번엔 적대관계였으니까. VIP 시사 끝나고 뒤풀이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웃음). 거기서 한 동료가 ‘같은 배우랑 세 작품이나 하는 건 쉽지 않은 인연이다. 대단하다’고 해주더라. 근데 그 동료가 배우 정우성이다. 정우성과 나는 1999년 ‘러브’부터 ‘태양은 없다’, ‘신의 한 수’까지 이미 세 작품을 했다. 내가 그렇게 반문하니까, ‘맞네. 내가 먼저네’하며 웃더라.”

-호흡이 좋다는 건 정확히 뭔가.
“서로 감정을 주고받을 때의 호흡을 말한다.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의 연속이다. 이런 작용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 희열을 느낀다.”

-연기 이야기하니 눈빛이 달라진다.
“대학시절 나는 연기에 미친사람으로 통했다. 무대에 빨리 올라가고 싶어서 입학하자마자 선배들 작품 단역에 막 출연했다. 오전에는 3학년 연극, 오후에는 4학년 졸업공연을 했다. 동기들이 첫 공연 올릴 때 나는 이미 9번째 공연이었다. 당시 대학동기가 ‘너 학점관리도 안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배우가 꿈인 애가 무대에도 안 서보고 어떻게 하냐’며 그 동기를 걱정했다. 으하하. 그 덕에 나는 의대도 아닌데 대학을 6년 다녔다.”

-대학시절부터 남다른 꿈이 있었나.
“원대한 생각이 원대한 결과를 맺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박하더라도 진정하다면 그 생각이 싹을 띄우고 성장한다. 나는 영화 ‘영웅본색’ 보고 장국영, 주윤발 이런 사람들이 멋있어서 연기 하고 싶었다. 지극히 17살 때 처음 든 생각이다.”

-딸 소을이나 아들 다을이가 아빠따라 배우를 하겠다면.
“어떤 일이건 그 일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면 찬성이다.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면 존중해줘야 한다. 반면 내가 배우니까 너도 배우해라하는 마음도 없다. 취미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통해 여러 직업군을 접해본 후 그 다음에도 배우가 좋다라고 하면 권장하겠다.”

사진=이호형 기자

황지영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