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KBL①] 양동근은 어떻게 리그 역대 최고가 될 수 있었나
[아듀 KBL①] 양동근은 어떻게 리그 역대 최고가 될 수 있었나
  • 박종민 기자
  • 승인 2020.04.02 15:22
  • 수정 2020-04-05 12:52
  • 댓글 0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양동근. /KBL 제공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양동근. /KBL 제공

[한국스포츠경제=박종민 기자] 프로농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지난 1997년 출범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시즌을 도중에 종료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은퇴도 잇따라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한국스포츠경제는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선수들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양동근과 전태풍의 인생역정, 그 동안 리그 은퇴 선수들의 근황 등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이렇게 떠날 선수가 아닌데....”

지난달 31일 현역 은퇴한 양동근(39)을 두고 농구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양동근의 매니저를 맡았던 구본근(45)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사무국장은 2일 본지와 통화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즌이 조기 종료돼 은퇴 경기나 세리머니를 열어줄 수 없었던 게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공격과 수비 모두 잘했던 완벽한 가드

향후 1년간 코치 연수를 받을 예정인 양동근은 한국농구연맹(KBL) 역사상 최고 선수로 평가 받는다. 한국 농구 역대 최고의 선수로는 신동파(76), 이충희(61), 허재(55) 등이 거론되지만, 1997년 출범한 KBL에서 가장 화려한 족적을 남긴 선수는 다름 아닌 양동근이다.

그는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주 KCC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프로에 입문했다. 드래프트 직후 울산 현대모비스로 트레이드된 그는 상무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여태까지 한 팀에서만 뛰었다. 그가 거머쥔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2006-2007ㆍ2009-2010ㆍ2012-2013ㆍ2013-2014ㆍ2014-2015ㆍ2018-2019시즌), 플레이오프(PO) 최우수선수(MVP) 3회(2006-2007ㆍ2012-2013ㆍ2014-2015시즌), 정규리그 MVP 4회(2005-2006ㆍ2006-2007ㆍ2014-2015ㆍ2015-2016시즌)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양동근은 KBL 통산 665경기에 출전해 평균 33분6초를 뛰면서 11.8득점 5.0어시스트 2.9리바운드 1.5스틸을 기록했다. 농구전문가인 손대범(40) 점프볼 편집장은 “프로농구 초창기 때만 해도 퓨어 가드가 정통 포인트 가드라는 관념이 강했다. 때문에 양동근은 적지 않은 평가절하를 당했지만, 그는 차츰 포스트 업과 3점슛, 중거리슛, 픽을 활용하는 능력과 시야, 수비를 따돌리는 여러 드리블 동작을 플레이에 가미하면서 수비수들을 어렵게 했다”고 전했다.

2004-2005시즌 신인상 수상과 시즌 베스트5 9회 선정은 물론 최우수 수비상도 2차례나 차지했다. 손대범 편집장은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이글이글한 눈빛과 사이드스텝은 추승균(46) 이후 가장 위력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단순히 공격만 잘하는 가드보단 마이클 조던(57), 게리 페이튼(52) 같이 공격과 수비가 모두 뛰어난 선수를 최고로 친다. 조던과 페이튼은 각각 1988년과 1996년 가드로서 이례적으로 올해의 수비수상을 받았다. KBL의 양동근 역시 공수 조화가 완벽한 보기 드문 가드였다.

양동근이 코트를 뛰어다니고 있다. /KBL 제공
양동근이 코트를 뛰어다니고 있다. /KBL 제공

◆시작은 미약, 끝은 창대했던 농구 인생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모범 선수상 2회 수상 경력이다. 서울 용산고 입학 당시 키가 168cm로 수비 전문 식스맨이라 대학 농구부 입학조차 어려웠던 그가 한양대를 거쳐 프로 데뷔 약 17년 만에 리그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받을 수 있었던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과 성실함 덕분이다. 지난 2007년 3월 서울 삼성전에서 패한 뒤 그는 머리카락을 자르며 각오를 다졌다. 어느 날 경기 중 레이업을 실수한 뒤엔 불 꺼진 체육관에서 레이업 300개를 연습하기도 했다.

양동근의 방에는 '최선을 다하자', '항상 열심히 하자' 등의 각오와 유재학(57) 감독의 패턴 지시가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그가 직접 쓴 메모들이다. 지난해 8월 서울 연세대학교 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비 시즌인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 인사에 “여전히 운동하고 지낸다”라고 웃었다. 그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마지막 시즌이 된 2019-2020시즌에도 40경기에 출전해 평균 10.0득점에 4.6어시스트(4위), 2.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양동근은 취재진을 대할 때 허투루 농담을 던지는 일이 좀처럼 없다. 과거 농구 담당기자들과 함께 한 테이블에서 마주했던 양동근의 언행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기자들이 농담을 섞어가며 숱한 질문을 던졌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들은 하나 같이 뻔한 내용이었다. 분위기는 유했고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지만, 기자들이 기사에 활용할 만한 남다른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취재진 앞에서 즉흥적이지 않고 정제된 말을 해왔기 때문에 십수 년간의 선수 생활에서도 실언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물론 선후배 동료, 구단 프런트 직원들과 관계에선 정(情) 많은 선수로 통한다. 구본근 사무국장은 “오후 7시에 경기를 시작하는 평일이면 선수들은 보통 오후 3~4시에 간식을 먹는다”라며 “그런데 피자, 햄버거를 먹지 않는 (양)동근이는 저에게 ‘형, 짜장면 한 그릇 포장해줄 있느냐’고 물어서 따로 포장해서 먹인 적이 많다”고 기억에 남는 일화를 전했다. 양동근은 은퇴와 관련해서도 평소 형처럼 여기는 구본근 사무국장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1일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유재학 감독은 “제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라며 "양동근이 프로에 입단할 때는 '특A급' 선수가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칭찬했다. 정작 양동근은 “제가 역대 최고 선수라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열심히 한 발 더 뛴 선수라 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동근은 선수 시절 코트 위를 부지런히 뛰어 다니며 하루, 한 달, 한 해가 다르게 기량을 발전시켰다. 마치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진해지는 빈티지 와인처럼 말이다.

1일 은퇴 기자회견을 연 양동근. /KBL 제공
1일 은퇴 기자회견을 연 양동근. /KBL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