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신승훈이 스페셜 앨범 '마이 페르소나'로 컴백했다. 스스로 '신승훈의 명함 같은 앨범'이라고 평할 만큼 이번 앨범에는 신승훈 하면 떠오르는 스타일의 노래들이 가득 담겨 있다. 음악적 실험보다는 지금까지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준 이들을 향한 감사를 충실히 담은 앨범이다. 팬들의 끊임없는 지지와 음악에 대한 열정. 이 두 가지는 신승훈을 여전히 추억이 아닌 현재에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회가 어떤지.

"이제 한 번쯤 뭔가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신인 시절에 '한 획을 긋기 위해 너무 노력하진 않겠다. 대신 점은 찍어 나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보들을 보면 하나하나 찍힌 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이렇게 계속 점을 찍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선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러면 한 획을 그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내자면 지난 30여 년 동안 열심히 해왔던 것 같다."

-수많은 히트 곡들을 냈다. 스스로 생각하는 신승훈의 대표곡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곤 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떤 때는 '그 후로 오랫동안'이라고 대답했고, 어떤 때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30주년을 맞은 올해는 '미소속에 비친 그대'라고 하고 싶다. 나를 처음 알렸던 노래고 그만큼 내게 중요하다. 그 노래로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데뷔 30주년에도 여전히 '발라드의 황제'라 불리는데.

"사실 '엄마야'라는 디스코 음악도 하고 '라디오를 켜봐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노래들도 했다. 그런데 아마 대중이 좋았던 신승훈의 음악은 발라드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족쇄 같기도 하고 애증을 갖게 되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쨌든 자기 색 하나를 갖고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발라드의 황제'라고 하면 꼭 신승훈 이름이 거론되니까. 누군가는 한 가지 색만 추구했다고 질타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내 색을 가지고 해왔다는 훈장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잘 버틴 것 같다."

-'마이 페르소나' 앨범 소개를 해 달라.

"여섯 곡은 작곡했고 두 곡은 후배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한 곡은 원우의 '워킹 인 더 레인'이고 또 다른 한 곡은 '제 13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더필름의 '사랑, 어른이 되는 것'이다. '워킹 인 더 레인' 같은 경우에는 2007년 샤워를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 제목을 알고 싶어서 노래가 끝나고 DJ가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CCM계에서는 이미 유명하다고 하더라. 그 때 만나서 인연을 맺었고, 그 노래를 신승훈화시켜서 불러 봤다. 더필름의 경우 나랑 비슷한 류의 음악을 한다고 생각을 해 왔던 친구다. 제목 안에 모든 게 다 포함돼 있더라. 노래가 너무 좋았다. 꼭 철이 없는, 어른이 아직 못 된 우리들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앨범에 수록하게 됐다."

-후배들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웃음) 근데 내가 원래 숨은 영화, 숨은 음악 찾는 걸 좋아한다. 숨겨진 노래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 어쩌면 데뷔 30년 된 가수로서의 소명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음악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번 앨범에는 두 곡 밖에 못 실었지만 앞으로 대중이 많이 모를법한 노래들만으로 구성된 앨범도 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그러자 우리'의 더블 타이틀을 내세웠다.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너무 갈렸다. 6대4도 아니고 완전히 5대5였다. 이번 앨범은 모니터링을 많이 했거든. 사실 마케터들은 '한 곡에 집중해서 많이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마음이 없더라.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 같은 경우에는 전주만 32초다. (웃음) 이번 앨범에는 어떤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마이 페르소나'라는 앨범 명처럼 나의 분신같은 음악들을 싣고 싶었다."

-'마이 페르소나'라는 앨범명은 어떻게 탄생했다.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페르소나는 배우 송강호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기억이 나서 나 역시 일종의 감독, 프로듀서니까 '나한테 페르소나 같은 배우는 누구지?'라고 자문을 해 봤다. 그 때 생각난 게 내 음악들이었다. 가수는 명함도 없지 않나. 이번 앨범은 내게 명함 같은 존재다. 모험심은 절대 없다. '전설속의 누군가처럼' 같은 희한한 장르의 노래도 많이 했는데, 이번 앨범에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는 노래들을 실었다. 30여 년 동안 신승훈을 사랑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도 담고 있다."

-지난 30여 년의 가수 생활을 돌아본다면.

"데뷔한 이후 10년 동안은 스타였다. '스타의 삶'을 살았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주고 좋아해 줬던 시기다. 그런데 난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뮤지션의 길을 가고 싶어 앨범을 냈더니 연예인이 돼 있더라. 그래서 데뷔 10주년부터 20주년까지는 공연을 많이 했다. 연예인이지만 나는 음악인이고 싶었다. 사람들이 '왜 TV 나와서 한 곡만 부르느냐'고 하는데 사실 그건 내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지 않나. 그 때부터 많이 찾아다니고 공연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찾아가는 서비스라고 해야 하나. (웃음) 그 때 '신승훈쇼'도 만들게 됐다. 몸은 힘들어도 많은 팬들과 만났고 교감했던 시기다. 사실 방송을 많이 안 하면 잊히게 마련이다. 근데 그거 무서워서 방송을 하고 싶진 않았다. 또 그런 불안감으로 방송에 나가면 사람들이 질려한다. 보고 싶을 때 가끔씩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후 30주년까지는 프로듀서와 아티스트를 꿈꿨던 시기라고 볼 수 있겠다. 요즘은 아무한테나 '아티스트'라는 칭호가 가지만 내게는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그 어떤 것보다 크다. 만약 대중미술계와 대중음악계가 맞붙는다면 '너희한테는 그런 작가가 있어? 우리한테는 신승훈이 있어'라고 할만한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이거 신승훈 노래 아니야?'라고 하는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고갱의 그림을 보면 고갱 같고, 고흐의 그림을 보면 고흐 같지 않나. 이렇게 자신만의 무엇을 만드는 건 모든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들이 꿈꾸는 것이다. 고흐에게 고갱의 화풍을 섞으라고 하면 퓨저너블해질 수는 있겠지만 아티스트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똑같은 것만 한다는 평가로) 억울하기도 했지만 계속 점을 찍어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10년은 아티스트라는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노력하겠다."

-코로나19 사태로 전국투어 공연 일정에 변경이 생겼는데.

"일단 4월로 예정했던 세종문화회관 콘서트는 취소가 됐다. 그래서 서울 공연은 올 9월쯤 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전국투어는 수원 공연부터 시작이다. 안타깝긴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공연을 준비할 시간이 3개월 더 생긴거니까. 원래는 '미소속에 비친 그대'가 오프닝이었는데 공연이 밀리면서 세트리스트를 바꿨다. '미소속에 비친 그대'는 뒤로 밀고 뒤에 있던 노래를 앞으로 당겼다. 오프닝에서부터 모든 것을 쏟아 부으려고 하고 있다. 관객들의 속이 시원할만한 공연을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번 노래들은 공연에서 들어야 진짜 제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많이 공연장에 오셔서 들어 주셨음 싶다."

사진=도로시컴퍼니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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