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배우 박희순의 코믹함을 상상해본 일이 있던가. 영화 ‘세븐데이즈’ ‘작전’ ‘의뢰인’ ‘용의자’ 등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하던 박희순이 코미디 장르 ‘올레’로 돌아왔다. 파마머리를 장착하고 극중 원나잇을 갈구하는 철없는 수탁으로 변신했다. 박희순은 “내가 스무 살 청춘도 아니고 무슨 이미지를 걱정하겠느냐”며 “모든 걸 내려놓고 제대로 망가져봤다”고 말했다. 황지영기자 hyj@sporbiz.co.kr

-그동안의 필모그래피 중 역대급 찌질함이다.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주로 형사 역할을 했는데 이번엔 헤어스타일부터 변신해 전혀 다른 이미지를 어필했다. 뽀글뽀글 파마는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 관객들에게 캐릭터 설명할 시간을 단축시키자는 의도였다.”

-봉만대 감독을 닮았다는 반응이 있다.
“하하하. 감사하다. 스크린으로 보니 못생김의 절정이더라. 최악의 비주얼이다. 수탁을 연기하면서 잘생긴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닌데 내 예상보다 훨씬 못생기게 나와 만족한다.”

-수탁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이런 엉뚱한 친구가 있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아픔이 느껴졌다. 사법고시 준비를 13년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공부를 멈추지 못하는 답답함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기복도 심하고 좌충우돌하는 성격이다. 소심한 면도 있다. 여러 가지로 표현하기 재미있는 인물이다.”

-유서를 쓰는 첫 장면부터 디테일이 대단하더라.
“요즘 ‘웃프다’라는 신조어가 있는데 참 그 말이 마음에 든다. 수탁 캐릭터가 딱 웃프다. 진지한데 유머가 있다. 유서에 오탈자가 발견되니까 바로 고치는 첫 장면에서는 죽음을 결심하고서도 일말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수탁의 감정을 담았다.”

-고백 장면은 어떻게 소화했는지.
“루비(한예원)에게 취중고백을하는데 사랑이건, 연민이건 뭐든 진심을 담아 하고자 했다. 시적인 대사였는데 수탁이 하니까 이상하더라.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려 조금 당황했다가 수탁 캐릭터가 잘 살았구나 하는 마음에 만족했다.” 

-영화 말미 수탁은 제주에 남는데, 혼자 남아 뭘 했을까.
“주변에선 게스트하우스에 다시 가서 여자를 찾을 거라고 하시는데, 나는 조금 다르다. 해남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감독님이 2탄을 만들려고 나를 제주에 남긴걸까? 하하하. 수탁은 아무래도 고시원 골방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의 굴레를 벗는 것이 수탁의 가장 큰 목적이다.”

-실제 성격과 너무 달라 캐릭터 몰입이 힘들진 않았나.
“평소 나는 조용한 성격이다. 술이 들어가도 말보다는 박수를 치는 등 리액션만 커진다. 수탁을 연기하면서 내 안의 흥을 뽑아내려 했다. 점잔을 빼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물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이왕 망가진 거 춤도 추고 마음이었다.”

-예능으로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건 어떤가.
“예능은 내 모습이라 조금 꺼려진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망가지는 건 괜찮은데 예능에서 내 모습을 보인다는 건 용기가 나질 않는다.”

-캐릭터 롤모델이 채두병 감독님이었다고.
“감독님의 실제 친구 분 이야기라고 들었다. 여러 번 고시에 낙방하고 괴로워하는 친구와 제주 여행을 떠난 실화를 극화시켰다. 감독님이 매일 오전 6시만 되면 메신저를 보냈다. 고시생의 애환을 단체방에 이만큼 올려주시는데 그걸 읽으면서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배우들은 오전 6시에 무슨 날벼락인가(웃음). 어떨 땐 신하균, 오만석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올라와 내가 날벼락을 맞을 때가 있었다. 그 이후 메신저를 무음으로 돌렸다.”

-신하균, 오만석과의 호흡이 너무 좋아 부럽더라.
“술자리를 많이 가졌다. 감독님이 셋의 케미가 우리 영화에 가장 중요하다며 술자리를 많이 만들어주셨다. 오만석이 진행하고 신하균과 나는 조용히 마신다. 오만석은 술을 빨리 마시고 금방 취해버린다. 신하균은 막걸리를 와인처럼 조금씩 마시는 타입이다. 나는 중간에 일이 있어 갔다.”

-일이라면 아내인 배우 박예진과의 약속인가.
“통금시간이 있다. 거기까지만 말하겠다. 결혼을 하니 정말 행복하다. 여유가 더 생겼고 매사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대화를 나눠보니 박희순이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나는 팬이 없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 내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가끔 검색해보는데 팬이 없는 것 같다(웃음). 이 영화를 보고 나를 싫어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사진=이호형기자

황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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