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여자골프 세계랭킹 10위 이정은의 자전적 이야기 및 취재 후기
이정은(왼쪽)이 아버지 이정호(가운데) 씨, 어머니 주은진 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은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여자골프 세계랭킹 10위인 ‘핫식스’ 이정은(24)은 좋은 의미에서 욕심이 많은 선수다. 적어도 2016년 프로 데뷔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이정은은 그랬다. 데뷔 첫 해 신인상을 수상한 그에게 롤 모델을 묻자 “선배 언니들 각각의 매력과 장점을 모두 배우고 싶다"며 "박성현(27) 선배의 비거리, 이정민(28) 선배의 정교한 아이언 샷, 이승현(29) 선배의 리듬과 퍼트 실력, 허윤경(30) 선배의 미소와 여유 있는 플레이를 닮고 싶다"고 답했다.

그때 이정은의 나이가 20세였다. 프로에 갓 들어온 스무 살 선수가 그런 식으로 당돌하게 얘기하는 건 처음 봤다.

◆순천에서 상경, 인생 첫 전환점

자아가 단단해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고난과 역경을 거쳐온 덕분이었다. 이정은은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기고한 '아직 남은 나의 길(MY ROAD LESS TRAVELED)'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트럭 운전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제가 네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셨다”며 “그 모습은 제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다.

9세 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던 그는 12세 때 지루함을 느껴 골프를 그만뒀다. 이후 15세 때 생계형 티칭프로를 목표로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태어난 곳 전라남도 순천에서 티칭프로가 돼 생계를 잇고자 했지만 서울의 유명 감독으로부터 골프 아카데미 기숙사 합류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서울로 향하게 됐다. 이정은은 “휠체어에 앉아 계신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싫었다. 좀 무서웠고 두렵기도 했지만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전환점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정은(오른쪽)이 아버지 이정호(가운데) 씨, 어머니 주은진 씨와 함께 폭포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정은 제공

◆LPGA 진출이라는 또 다른 도전

아마추어 대회들에서 우승하던 그는 201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해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7년엔 전관왕에 올랐다. 2018년에도 상금왕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KLPGA를 평정한 이정은은 또 다른 갈림길을 마주하게 됐다. LPGA 진출을 고민하던 시기에 대해 “골프가 아닌 다른 모든 것에 대해 긴장되고 조금은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고심하던 이정은은 2018년 11월 24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LPGA 진출 결정 사실을 최초로 알렸고, 같은 달 26일자 지면에 그 뒷얘기를 전했다. “11월 23일 미국 진출에 대한 결정을 확정하고 외부에 처음 알렸다”는 이정은은 “제 강점은 크게 무너지지 않는 ‘꾸준함’이라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당시 그가 읽고 있던 책은 김수현(77) 작가가 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이었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중 한 사진에는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어쩌면 남들이 걱정하는 그 곳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힘겨울 걸 알면서도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선후배들도 인정하는 이정은

LPGA 진출 1세대인 전설 박지은(41) SBS 골프 해설위원은 전화 통화에서 눈에 들어오는 후배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정은은 눈에 독기가 있고 눈빛이 살아 있더라.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20대 초반 미녀이지만, 골프장에선 눈빛이 달라지고 집중력이 좋은 골퍼다”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KLPGA 전관왕에 오른 최혜진(21) 역시 “이정은 언니가 KLPGA에 있다가 LPGA로 진출하는 과정을 모두 곁에서 지켜봤고, LPGA에서도 신인상을 타는 등 정말 잘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눈길이 많이 간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길을 만들어 주시는 것 같다. 언니의 경기에 대한 집중력과 근성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정은은 “어린 시절에 제가 더 일찍 고생스럽고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LPGA에서 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2019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거나 올해의 신인상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거나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길은 늘 그렇다. 이제 24세 밖에 되지 않은 제가 이미 오래 전에 배운 교훈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시인인 고(故)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정은 역시 그랬다. 사람들이 적게 가는 불편하고 험난한 길을 택했고, 그 결과는 여자골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로 돌아왔다.

이정은(오른쪽)이 어머니 주은진 씨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이정은 제공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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