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드림콘서트'에서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야광봉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올 초 송가인과 그 팬클럽은 난데없이 정치계에서 회자되며 곤욕을 치렀다.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공식색으로 내세운 '해피핑크'가 송가인의 공식 색인 핫핑크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미래통합당이 해피핑크를 통해 '송가인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색상에 소유권이 어디 있느냐는 반박이 이어지며 정치권과 가요계를 넘나드는 '색깔 전쟁'이 벌어졌다.

■ 1990~2000년대 응원 문화 이끈 공식색

이런 '색깔 전쟁'은 가요계에서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세대 아이돌이 태동했던 1990년대 중·후반이 시작이었다. 그룹 H.O.T.가 공식색으로 하얀색을 선정했고, 젝스키스는 노란색, 신화는 주황색, S.E.S는 펄보라색, god는 하늘색 등을 자신들의 공식 컬러로 활용했다.

공식색은 아이돌 스타들과 팬덤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식색으로 된 우비나 풍선을 통해 팬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냈고, 이를 활용한 응원 문화도 무궁무진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수들이 출연하는 '드림 콘서트' 같은 장소에서는 누구의 상징색 풍선이 더 많이 보이는가로 팬클럽과 가수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god의 공식 팬클럽 이름이 팬지오디라는 것은 모르더라도 '하늘색 풍선' 노래를 아는 대중은 많다. 공식색은 가수와 팬덤이 가지는 영향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샤이니 콘서트에서 흔들리는 펄아쿠아그린 응원봉.

문제는 초기에 활동했던 아이돌 스타들의 경우 공식색이 빨주노초파남보 식으로 두루뭉술하기 때문에 새로운 가수들이 데뷔하고 공식색을 발표할 때면 종종 색상 유사성 논란이 불거진다는 점이었다. 일례로 엑소가 펄그레이를 공식색으로 확정하자 H.O.T.의 팬클럽인 클럽 H.O.T.(하얀색)와 비스트의 팬클럽 뷰티(진회색)가 자신들의 공식색과 유사하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보아 역시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선정하면서 젝스키스의 팬들과 마찰을 빚었다. 트와이스는 쇼케이스 때 샤이니를 상징하는 펄아쿠아그린과 유사한 민트색 계열의 응원봉을 사용해 논란이 됐고, 이후 트와이스의 팬들이 이 응원봉은 1회용일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이후 지정된 트와이스의 공식 색상은 아프리콧과 네온 마젠타다.

■ 팬톤 컬러, '색깔 전쟁'의 진화

아이돌 그룹들은 많아지고 단순화할 수 있는 색상의 수는 한정돼 있다 보니 최근 가수들은 자신들의 색을 팬톤 색상 넘버로 확실하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색상의 넘버까지 확실하게 고지함으로써 유사성 논란에 휘말리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트와이스의 아프리콧은 팬톤 712 C, 네온 마젠타는 팬톤 812 C, 미래통합당의 '해피 핑크'는 191C다.

세븐틴 공식색 블렌딩.

특히 최근의 추세는 2~3가지 색상을 블렌딩하는 것이다. 세븐틴의 경우 로즈쿼츠(팬톤 13-1520)와 세레니티(팬톤 15-3919)를 조합한 파스텔톤의 색상을 공식 컬러로 갖고 있으며, 윤지성은 흔히 말하는 민트(팬톤 3242 U), 연그레이(팬톤 7541 U), 핑크(팬톤 250 U)의 조합을 공식색으로 한다.

이렇게 여러 색을 조합하는 것의 장점은 이를 통해 가수가 가진 정체성을 보다 확연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데뷔 이후 줄곧 '악몽' 시리즈를 이어가며 다크하고 강렬한 매력을 보여줬던 그룹 드림캐쳐는 "붉은 달이 뜨는 날, 드림캐쳐가 꿈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세 가지의 공식색을 공개했다. 어두운 밤처럼 보이는 팬톤 블랙 6 C와 달처럼 샛노란 팬톤 P 10-6 C, '붉은 달'의 색인 팬톤 7623 C의 조합은 색만 봐도 드림캐쳐가 어떤 음악과 콘셉트를 지향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비오브유의 공식색.

또 색상 넘버와 스타의 생일을 맞추거나 데뷔 일자를 맞추는 등 재미 요소를 높인 색 배합도 인기다. 비오브유의 경우 데뷔 일자인 1월 7일의 컬러 넘버를 가진 노란빛의 팬톤 107 U와 멤버 국헌의 탄생석(피코크 그린 펄) 색상인 블루그린 컬러의 팬톤 316 C, 유빈의 탄생석(킬벌라이트) 색상 다크 네이비 컬러의 팬톤 4280 C를 공식색으로 가지고 있다. JBJ의 경우 활동 당시 자신들의 별칭이었던 '787'을 RGB 컬러코드로 확장한 보랏빛이 도는 블루 컬러의 #787FFF(팬톤 2725 C)와 레몬빛의 #FFF787(팬톤 옐로 0131 C)를 공식색으로 활용했다.

아이돌 그룹들의 색상은 이제 공연장에서의 응원 문화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상징이다. 응원봉이나 굿즈 등에 스타들의 이름이나 얼굴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색상만으로 굿즈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그룹들이 경쟁하는 가요계에서 자신들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색깔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사진=OSEN, SM엔터테인먼트, 플레디스 제공, 비오브유 공식 인스타그램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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