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최지연 기자] 배우 이순재의 갑질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매니저 근무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9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에서는 이순재의 전 매니저 김모 씨가 이순재의 매니저로 일했던 두 달간 매니저 업무 외의 일을 해야 했으며 결국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모 씨는 "이순재의 아내가 쓰레기 분리수거는 기본이고 배달된 생수통 운반, 신발 수선 등 가족의 허드렛일을 시켰다"며 주말을 포함해 두 달 동안 단 5일밖에 쉬지 못했고 주당 평균 55시간을 일했다고 폭로했다. 더불어 180만 원의 월급만 받았으며 4대 보험을 들어달라고 요구했으나 오히려 회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순재 측은 30일 김 모 씨의 주장에 반박하며 "이순재 선생님이 그럴 분이 아니지 않나. 보도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후 이순재의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는 입장문을 통해 "선생님은 지난 60여년간 배우로 활동하시면서 누구보다 연예계 모범이 되고 배우로서도 훌륭한 길을 걸어왔다. 당사는 이 보도가 그동안 쌓아 올린 선생님의 명예를 크게 손상했다고 보도 엄정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30일 '8시 뉴스' 측은 후속 보도를 통해 "이순재 측이 김 씨가 한 허드렛일이 두 달 간 세 건이라고 밝혔지만 SBS는 가족 심부름이 일상이었던 증거를 더 갖고 있어도 보도하지 않았다.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데 사례 나열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열악한 근로 환경

이번 사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김 모 씨가 공적인 업무 외에 집안 내부의 일을 했다는 점이다. 방송에서 밝힌 사례만 해도 쓰레기 분리수거, 생수통 운반, 신발 수선 등으로 공적인 업무라고는 볼 수 없는 허드렛일이었다. 

게다가 4대 보험 미가입, 추가 근무 수당 미지급, 부당해고,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근로자라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이 잘 갖춰지지 못해 근무 환경 자체가 열악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30일 방송된 '뉴스 8'에서도 김 씨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이순재가 아닌 그 가족이 허드렛일을 시켜도 회사에 강하게 따질 수 없었고 주당 평균 55시간을 근무해 4대 보험 가입 의무 대상(수습 여부와 무관하게 주 15시간 이상 노동자는 4대 보험 의무 가입)인데도 무시됐으며 주 40시간 넘게 일해 시간 외 근로 수당을 받아야 했으나 못 받았다고 설명했다.

SBS는 "연예계의 부조리한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데에는 '다들 그래 왔지 않느냐'는 안일한 인식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순재는 SBS에 "매니저 김 씨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낀다. 이번 일을 계기로 관행으로 여겨온 매니저의 부당한 업무들이 해소되길 바란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 "부당한 대우 아니다"

이런 가운데 김 모 씨 전에 일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이순재의 전 매니저 백 모 씨가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순재 선생님의 매니저로 올해 4월까지 일했다. SBS 8시 뉴스에서 인터뷰 마지막에 거론된 배우 지망생인 이전 매니저가 바로 나인 것 같아 마음 졸이다 글을 올려본다"라며 "이순재 선생님의 매니저로 일하며 값진 경험과 배움을 얻었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것만큼 좋은 말씀도 많이 해줬고 배우로서 작품에 임할 때 자세를 곁에서 지켜보고 배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 배울 수 있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김 모 씨와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백씨는 "연로하신 두 분만 생활 하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인터넷 주문은 전혀 못하셔서 필요하신 물건을 주문해드리고 현금을 입금 받았고 생수병이나 무거운 물건은 제가 당연히 옮겨드렸다"며 "집을 오가면서 분리수거를 가끔 해드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해달라고 하지 않으셔도 무거운 물건을 들어드릴 수 밖에. 하지만 노동 착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로한 두 분만이 사시는 곳에 젊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들은 도와드리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순재 선생님은 누굴 머슴처럼 부리거나 부당하게 대우하실 분이 아니다. 무뚝뚝하시지만 누구에게나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셨고 모범이 되기 위해 애쓰셨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1일 오전 이순재의 소속사는 논란과 관련된 상세한 상황 설명과 함께 재차 공식 입장을 밝혔다. 소속사는 "올해 3월 온라인 채용사이트를 통하여 배우 이순재의 로드매니저를 구인했다. 10년 전 잠깐의 경험을 빼면 매니저 경력이 없었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일을 맡기기로 했다"며 "소속사는 1인 기획사로 별도 운영하던 연기학원의 수업이 코로나19로 중단되며 임대료라도 줄이고자 급하게 사무실 이전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4대 보험에 대해 "로드매니저의 업무 시간이 배우의 스케줄에 따라 매우 불규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라고 생각하여 4대 보험을 가입하지는 않았다. 급여는 매니지먼트 업계 평균 수준으로 책정하였고 배우 촬영 중 대기시간 등이 길어서 하루 평균 9-10시간 정도 근무를 했다"며 "모두 소속사의 미숙함 때문에 발생한 일이고 로드매니저의 진정으로 노동청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노동청에서 결정할 것이고 이로 인한 모든 법률상 책임 내지 도의적 비난은 달게 받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소속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로드매니저와의 계약을 해지한 사실은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소속사는 "소속사가 아닌 배우 개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매우 강하게 요구하였고, 계약 당사자도 아닌 배우와 그 가족까지 곤란하게 만들었다"라며 "이 부분도 로드매니저의 신청으로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절차가 진행 중으로, 소속사는 법적 절차에 성실하게 임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머슴살이'나 '갑질'이라는 표현은 실제에 비하여 많이 과장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배우 이순재와 부인 모두 80대의 고령으로 특히 부인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항상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라며 "집에서 나가는 길에 분리수거 쓰레기를 내놓아 달라거나 수선을 맡겨달라고 부탁하거나, 집에 들어오는 길에 생수통을 들어달라거나, 배우를 촬영 장소에 데려다 주는 길에 부인을 병원 등에 내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간의 로드매니저들은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은 부인을 배려하여 오히려 먼저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부인도 도움을 받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으로 가사 업무라고 불리는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을 시킨 사실은 전혀 없으며 '허드렛일'이라고 표현된 대부분의 심부름 등은 당연히 가족들이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끝으로 소속사는 "배우 부부는 로드매니저들이 사적인 공간에 드나든다고 해도 공과 사는 구분하여야 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편하고 가깝게 느껴진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상처 입은 해당 로드매니저에게 사과를 드린다"라며 "기회를 준다면 빠른 시일 내에 만나서 직접 사과하고 싶다. 기자회견을 열어 배우의 입장만 밝히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라 판단하여 하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번 사태에 대해 입장 발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다수의 연예인들이 매니저를 공적인 업무 외에 사적인 일의 처리를 맡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행이었다"며 "매니저가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고 관리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한 쪽의 일방적인 강요보다는 양쪽 모두 자연스럽게 행하는 일들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러한 일이 잘못된 관행임을 인지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근로 계약서 작성이나 4대 보험 가입, 근무 시간 외 노동에 대한 수당 등은 당연히 처리되어야 할 부분인데 다들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 빨리 인식이 바뀌고 개선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SBS 방송 화면, OSEN

 

최지연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