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배우 허성태는 연봉 7,000만원의 대기업을 뿌리치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2011년 회식 후 늦은 밤 귀가하다 우연히 SBS ‘기적의 오디션’ 공고를 보고 덜컥 지원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허성태는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느닷없이 사표를 쓰고 가난한 배우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허성태는 “아내의 도움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죠. 내 이기심으로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이번 ‘밀정’으로 조금은 보답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라며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가족들이 흥행에 일조하고 있다고.
“엄청난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형님이 군인이신데 무슨 사단 150명 단체관람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중대별로 다섯 번씩 할 것 같다(웃음). 아내 회사에서도 스무 명 정도 단체관람을 갔다. 나도 함께 초대받아서 또 봤다. 어머니는 부산에서 이불장사를 하시는데 시장상인들과 단체관람을 가셨다.”

-본인은 영화 몇 번 봤나.
“김지운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이 출연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80번 봤다. ‘밀정’엔 제일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가 있고 게다가 나도 있으니 그 이상으로 볼 것 같다. 스케줄이 없으면 영화 내릴 때까지 조조로 매일 볼 예정이다.”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왔을 것 같다.
“다들 좋은 말씀들 해주신다. 가족들도 좋지만 감독님들의 연락이 와서 기뻤다. TV조선 ‘백년의 신부’를 함께 한 윤상호 감독님이 SBS ‘사임당’을 찍고 계신데 같이 하자고 해서 중국사신 역할로 잠깐 얼굴을 비추게 됐다. 또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 ‘상의원’의 이원석 감독님이 ‘그때 편집이 많이 돼 미안하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하자’고 해주셨다.”

-‘밀정’엔 첫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를 함께한 이병헌도 나오는데.
“이병헌 선배님과는 두 번째 만남인데 아마 나만 알고 있을 거다. ‘광해’에서 죄인을 고문하는 단역으로 잠깐 나왔다. 엄태구와의 인연도 깊다. 영화 ‘잉투기’, JTBC드라마 ‘하녀들’에 이어 세 번째다.”

-극중 송강호한테 뺨을 맞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아주 행복했던 순간이다. 내가 뺨을 때려달라고 송강호 선배님께 제안했고 선배님이 김지운 감독님을 설득시켜 주셨다. 원래는 대사로 이어지는 신이라 지루하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었다.”

-뺨 때린 송강호가 위로의 말을 해줬나.
“송강호 선배님께 8번 뺨을 맞았다. 촬영 후 ‘성태야, 너 전화번호 어떻게 되니’라고 물어봐주시더라. 그날 선배님 전화번호를 받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휴대폰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 하하하.”

-송강호가 좋은 이유가 궁금하다.
“선배님 연기야 두말 할 필요 없이 대단하다. 개인적으로는 호불호가 명확한 점이 참 좋다. 역사관, 인생관 등 여러 가치들에 대한 생각들이 확고하다. 나는 상대적으로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옆에서 많이 배웠다. 사실 술자리 하면 우리끼리 이야기들이 한정돼 있어서 매번 같은 말이 나오곤 하는데 그래도 좋고 즐겁고 또 듣고 싶다.”

-‘밀정’으로 얻은 게 참 많은데.
“이 작품은 나의 은인이다. 중국 촬영 중에 임대주택에 당첨됐다는 전화도 받았다. 현장에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다음 작품 이야기도 조금 빠르게 오가고 있다. 역할이 커진다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의미 있는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아 설렌다.”

-해외로케이션이나 레드카펫도 처음 경험했다고.
“국내 세트장은 여러 군데 다녀봤는데 해외로케이션은 처음이었다. 중국에서 정말 ‘대륙의 스케일’을 체감했다. 세트장을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나온다. 엄청난 규모였다. 레드카펫 때는 정말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옆에 배우들이 손을 흔들기에 나도 따라 손을 흔들었는데 ‘꼼짝 마’ 포즈로 양손을 들었다.”

-대기업 해외마케팅 출신이라 외국어에 능통하다고 들었는데.
“촬영할 땐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까지 다 했다. 언어에 능통한 엘리트로 상해에서 정보를 팔아먹는 역할이었는데 거의 편집됐다. 또 영화에 헝가리인이 등장하는데 시나리오에는 러시아인으로 설정돼 있었다. 내가 대학 때 러시아어를 전공한 게 도움이 됐다. 개인적인 아쉬움이 약간 있을 뿐이지 작품은 정말 최고다.”

-촬영할 때 실수는 없었나.
“마지막 촬영 날 대형사고를 냈다. ‘정채산 확실히 있는 거지?’하면서 장전된 총을 들고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김지운 감독님 컷이 떨어지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굉음이 나서 주변 모두가 놀랐다. 예고 없는 총성이었으니까. 스태프한테 소리 안 나는 거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고 확인 하고 당긴 방아쇠였는데... 그 덕에 감독님께 혼나면서 촬영을 마무리했다. 마무리를 좋게 짓고 싶었는데 엉망으로 끝나 눈물이 막 나더라. 울면서 여기저기 인사했다. 어쨌건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현장에서 만난 김지운 감독은 어땠는지.
“말씀이 별로 없으셔서 더 무섭다. 내가 대본에 없는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을 때엔 리허설 때 살짝 끼워 넣어 본다. ‘이걸 해보겠습니다’ 감히 이렇게 말할 수가 없으니까 눈치껏 한 번 해보는 거다. 감독님이 리허설 보시고 ‘준비하자’고 하면 그대로 가도 되는 거다. 오케이나 잘했어 등 다른 말씀은 절대 없다. 아닐 경우엔 당연히 ‘그건 아니다’고 말씀해주신다.”

-‘밀정’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왜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준비하고, 긴장하고 소심하게 행동하느냐’고 묻더라. 나는 그게 겸손이고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드는 거였다. 이번 작품으로 깨달은 바가 크다. ‘밀정’으로 얻은 자신감을 여러 작품으로 표출해보겠다.”

사진=임민환 기자

황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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