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국가 백신 저가 입찰 문제 대두…백신 관리 소홀 공방
지난 21일 정부는 신성약품의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유통 과정에서 냉장 온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아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일시 중단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승훈 기자] 올해 국내 인플루엔자(독감)백신이 유통상 문제로 무료예방 접종 일시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책임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고수한 탓에 올해 처음으로 독감백신 유통을 맡은 업체 때문이라는 견해와 단순히 단가문제 등 입찰과정의 문제는 아니라는 견해가 팽배하다.

또 신성약품의 백신 상온 유통 사태가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이 원인이라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여전한 저가입찰 논란에 관리감독도 부실  

신성약품이 올해 처음으로 정부와 백신 조달 계약을 맺은 업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저가 입찰이 초래한 결과라고 보는 시선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의원이 질병관리청을 조사한 결과, 질병관리청은 5차까지 독감 백신 구매 입찰공고를 한 후 지난 8월 31일 개찰한 바 투찰금액상 신성약품은 2순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입찰에는 총 11개 업체가 참여했고 1순위 업체와 예정가격을 초과한 2개 업체를 제외한 8개 업체의 투찰금액은 모두 동일해 같은 2순위였다.

강 의원은 "유료 백신의 병원 납품가가 1만 4000원 정도 되는데 질병관리청이 무료 백신 단가를 8620원으로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건실하고 검증된 업체들이 입찰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국민 생명을 담보하는 치료제나 백신은 적정한 가격을 맞춰줘 안전하게 유통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그간 백신을 조달했던 업체들이 '입찰방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바람에 제조사로부터 백신 공급 확약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사정이 생겼고, 제조사 대부분으로부터 확약을 받은 신성약품이 당시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계약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성약품은 이번 사태와 낮은 단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제약회사들은 낮은 단가라고 얘기하겠지만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며 "우리를 포함해 여섯 군데가 같은 가격으로 낙찰받았는데, 그중 제약회사에서 백신을 주겠다는 공급확약서를 받은 곳이 우리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촉박한 일정...유통관리 소홀

신성약품이 낙찰되기까지 네 차례 유찰되는 과정에서 시일이 촉박해지면서 독감 백신 유통을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는 독감 백신 1도즈 공급가격을 지난해 평균 공급가격의 60% 수준인 8790원에 제시했다. 6월 시작돼 조달 입찰이 4차례 유찰된 배경이다.

강 의원은 “질병관리청이 적정온도로 수송해야 한다는 안내사항만 공고문에 넣어놓고 ‘업체가 알아서 지켜라’는 것은 국민 생명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무책임한 것”이라며 “최종 책임은 백신 유통을 제대로 관리 점검하지 않은 질병관리청에 있다”고 지적했다.

신성약품 측도 일정이 촉박했음을 시사했다. 김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배송업체가 잘못했어도 궁극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다. 입찰 후 전국에 배송해야 하니까 일정이 빠듯하고 촉박했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 “현재 문제는 지방에 배달하는 과정 중 차에서 차로 옮겨 실을 때 일부 백신이 상온에 짧게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분에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신성약품은 낙찰 후 유통을 백신 전문 물류업체에 맡겼는데, 이 업체가 냉장차에서 냉장차로 백신을 옮겨싣는 사이 차 문을 열어두거나 백신 상자를 실외 판자 위에 놓는 등 실온에 둔 장면이 질병관리청에 제보됐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독감백신은 차광된 상태에서 2∼8℃로 동결을 피해 냉장 보관하는 게 원칙이다. 유통할 때도 '콜드체인'이라고 불리는 냉장 상태가 잘 유지돼야만 백신 효과를 볼 수 있다. 높은 온도에서 백신을 보관하면 백신의 주성분 중 하나인 단백질 함량이 낮아지면서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독감 백신이 아이스박스가 아닌 종이박스에 운반됐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일부 회원(의사)은 독감 백신을 아이스박스에 정상적으로 받았으나 일부는 종이박스로 받은 데다 수령인이나 수령일시를 사인해야 하는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성약품 측은 종이상자 배송은 콜드체인이 구축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콜드체인 상황에서는 백신을 포장하고 있는 종이박스 상황에서 배송을 하고 콜드체인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박스를 통해 배송을 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제조사에서 백신이 올 때도 종이박스로 온다”며 “종이박스에 담아도 냉장차로 운반하니까 냉장차 안에서는 2~8도로 온도가 유지된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냉매가 붙은 캐리어에 종이박스를 담아 병원까지 전달한다”고 말했다.

백신을 아이스박스에 포장해 냉장차를 이용할 경우 오히려 적정 온도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제제 등의 제조·판매관리 규칙'에 따르면, 백신을 수송할 때에는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박스를 이용하거나 냉장차로 수송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21일 "인플루엔자 조달 계약 업체의 유통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일시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점이 발견된 백신은 13∼18세 대상 물량이다. /연합뉴스

철저한 검증 요구…대책 마련 촉구도

의료계에서는 당장 원칙에 어긋나게 보관, 배송됐다면 효능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약처도 상온에 노출된 독감 백신의 효능이 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철저히 검증할 방침이다.

효과뿐 아니라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를 확인하고자 단백질 함량과 다른 시험 항목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품질 검증에는 약 2주 정도 소요될 전망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약사법에 따르면 유통에 대한 품질관리 관련 사항을 위반했을 때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되어 있다"며 "이 부분은 정확한 조사를 한 후에 위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 백신 사업 전반을 돌이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성약품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도 냉장 배송 등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백신을 수송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신성약품이 이번주 중에 독감백신 유통 재발 방지 대책안을 마련해 질병관리청에 제출할 것으로 보여진다.

신성약품은 기존 백신 유통전문업체인 S업체와의 계약은 파기하고 다국적 유통업체와 새로운 계약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지난 22일 질병관리청은 백신 유통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로 신성약품의 독감 백신 500만 도즈(500만 명 분)의 접종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해당 물량은 이날 13~18세 어린이 대상의 정부조달계약 물량이었다.

정 청장은 "문제가 된 백신은 아직 접종이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유통 경로로 접종된 11만8000명분은 문제가 없다"며 "오는 10월부터 시작하는 62세 이상 접종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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