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양지원 기자] 배우 김호정이 영화 ‘프랑스 여자’에 이어 ‘젊은이의 양지’(28일 개봉)로 또 한 번 관객을 만난다. 극 중 채권추심 콜센터 센터장 세연 역을 맡아 현대사회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분했다. 정규직 채용을 빌미로 자리를 위협받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콜센터 현장 실습생인 19살 준(윤찬영)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버리는 가해자다. 김호정은 자리를 위협받는 이의 불안감, 어른으로서의 죄책감과 후회 등 복합적인 감정 연기를 소화하며 관객의 몰입을 이끌었다. 어느 덧 데뷔 30년차인 김호정은 “힘든 역할을 하면 빠져 나오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감정이 해소되는 것 같다”며 “초심 같은 마음이 생기고 힘이 난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시국에 올 한 해 두 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코로나19에 두 편이라니. (웃음) 관객들의 반응도 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를 볼 때 더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젊은이의 양지’가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지만 굉장히 미묘하게 긴장감을 갖고 있지 않나. 이걸 끝까지 집중하며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일반 시사로 본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두 시간을 진지하게 집중해서 보더라. 개봉 했을 때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했다.”

-신수원 감독의 작품은 극현실주의로 불리는만큼 보기 힘들어하는 관객도 있다. 어떤 면에서 감독의 팬이라고 한 건가.

“항상 스스로 ‘이 영화가 왜 좋을까?’라고 물었을 때 답은 꿈과 희망을 줬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내 모습과 닮아있을 때 위로를 받는다. 그럴 때 꿈과 희망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신 감독의 영화가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작품일 수 있지만 나는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라 좋았다. 너무 칙칙한 톤이면 나 역시 힘들었겠지만 신 감독은 그 안에 감정을 넣고 재미를 잘 살린다.”

-세연의 어떤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나.

“사실 내가 젊었을 때 사회는 굉장히 느렸다. 뭔가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성취감을 맛보기 마련인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렇지 않지 않나. 치열한 상황 속에 기회가 잘 없는 것 같다. 세연의 딸(정하담)의 모습에서 공감하는 게 많았다. 취준생인데 꿈이 정규직 아닌가. 세연 역시 아직도 정규직이 아니다. 사실 나 역시 선택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배우다. 늘 기다리고 조마조마해 한다. 대기업에 다녔더라면 은퇴할 나이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공감을 했다.”

-세연은 본사 상사에게 모욕적인 가해를 받기도 한다. 배우로서도 가해를 받았던 순간에 대해 떠올리게 됐을 것 같은데.

“그 술집 장면을 되게 좋아한다. 어떻게든 잘 되려고 술을 받아먹지 않나. 연기를 하면서 모욕감을 느낀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작업을 하려고 하다 거부당하는 순간도 있고, 내가 후배이기 때문에 참아야 할 때도 많았다. 또 여배우라는 이유로 참아야 하는 순간도 참 많고. 어렸을 때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더 강한 척을 했던 것 같다.”

-딸 미래 역을 연기한 정하담과 준이 역 윤찬영과 호흡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니 굉장히 생각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딱 작품 속 인물들 같아서 놀랐다. 속도 참 깊고 섬세한 배우들이다. 정하담은 굉장히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지 않나. 연기할 때도 그 아우라를 느꼈다. 윤찬영은 극 중 준이처럼 19살 때 이 역을 맡았는데 고3의 나이에 침착하게 연기하는 걸 보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흔들리는 기색 없이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

-좋은 어른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후배나 사람을 대할 때 달라진 게 있다면.

“그냥 잘 대하려고 한다. 꼭 후배라 그런 게 아니라 나 역시 남에게 존중을 받으면 좋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인연은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일에만 미쳐서 ‘연기만 잘 하면 돼’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30년을 연기했는데도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한 이유가 있다면.

“내 부족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싶은데 여전히 부족하다. 사실 삶이라는 게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코로나19가 터질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니 내 연기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촬영을 하다 갑자기 중단되기도 하니까.”

-오랜 시간 연기를 하며 한 번도 은퇴를 생각해 본 적은 없나.

“은퇴는 오드리 헵번 같은 사람이 하는 거다. 아름다운 얼굴로 전세계에 방점을 찍지 않았나. 배우들은 은퇴가 어디 있나. 자기 능력이 안 될 때 은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대중에게 사랑 받는 사람들 아닌가. ‘이제 그 사랑을 더 안 받을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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