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3년 전 얘기다. 당시 불혹이 다 되어가던 축구 선수 이동국(41)에게 전화로 조심스럽게 은퇴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사실 (제 나이가)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라고 답변했다.

K리그1(1부) 전북 현대에서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던 이동국은 기량 유지에 관한 고충도 털어놨다. 그는 "수비수들은 체력적으로 볼 때 장수하는 게 상대적으로 가능하지만, 공격수들은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고 버텨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나이가 많으면서 스트라이커로 뛰는 선수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라고 고백했다.

3년이 지난 후 그는 은퇴를 발표했다. 지난달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2020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밝혔다. 사실 갑작스러울 것도 없었다. 1998년 이후 23년간 뛰어 온 선수라 오히려 현역 생활을 연장한다고 발표하는 게 더 놀라울 법했다.

그래도 팬들의 충격은 컸다. 이동국은 K리그 역사에 ‘통산 548경기 228골 77도움’이라는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셈이다.

요즘 보기 드문 ‘정통 스트라이커’이기도 했다. 이회택(74), 차범근(67), 최순호(58), 황선홍(52)의 계보를 이었다. 그의 은퇴는 정통 스트라이커 기근인 요즘 한국 축구에 적지 않은 손실이다.

이동국을 포항제철공고 시절부터 지켜봐왔다는 축구계 원로 인사는 “천부적인 재능의 선수였다”고 돌아봤다. 물론 재능만 갖춘 선수는 아니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노력으로 최정상에 우뚝 섰다.

이동국은 불혹의 나이에도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했다. 그는 영리한 선수다. 보완해야 할 부분을 확실히 알고 보완하는 선수였다. 전북 구단 관계자는 과거 본지에 “밴드로 발목운동을 따로 하고 훈련에 나선 적이 있다. 스스로가 발목 근육을 더 키워야 한다고 판단하면 그걸 따로 훈련한다. 보완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따로 강화시킨다. 자신의 몸을 워낙 잘 아는 선수다”라고 귀띔했다.

이동국.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단잠’이라는 독특한 루틴도 롱런의 비결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일정이 있지 않는 한 훈련 전에 단잠을 취하곤 했다. 실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비법이었다. 경기를 앞두고는 음주도 멀리 했다. 자신의 신체를 잘 아는데다가 잘 먹고 잘 자며 경기에 방해되는 것들도 하지 않았다. 전북 관계자는 “운동 선수는 잘 먹고 잘 자는 게 기본인데 그게 의외로 어렵다. 이동국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그런 부분에서 월등했다. 그래서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대인 관계도 원만해 그를 형으로 따르는 동생들이 많았다. 취재진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 클럽 유벤투스FC가 지난해 7월 26일 팀 K리그와 친선전을 위해 방한했을 때도 그의 유쾌한 면모는 드러났다. 이동국은 3-3 무승부 직후 유쾌한 농담을 했다. 그는 “(기대와 달리 출전하지 않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5)보다는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33)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인 것 같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농담을 건네 취재진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동국은 1일 은퇴 경기에서도 특유의 성실함과 유쾌함을 모두 보였다. 그는 대구FC와 2020시즌 최종전(2-0 승)에서 올해 처음 풀타임을 소화했다. 슈팅은 4차례 시도했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경기 후 소감이 압권이었다. 그는 "더는 이런 수준의 경기가 저에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었다. 은퇴식을 하는 내내 다리에서 경련이 올라왔고 추워서 몸이 힘들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제 정신이 몸을 지배했다“고 힘주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쥐 안 나는, 경련 안 나는 운동을 하며 살겠다"고 덧붙여 주위를 웃게 했다.

이동국의 등번호 20번은 영구결번됐다. 당연한 대우다. 물론 그의 플레이도 팬들의 가슴 속에 영구적으로 새겨졌다.

박종민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