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양지원 기자] 여성 캐릭터들을 내세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코로나19 속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하고 있다. ‘F등급’(여성 감독 연출, 여성 작가 각본, 여성 캐릭터 중 한 가지 이상 포함) 영화의 약진이 이어지는 추세 속 김혜수의 ‘내가 죽던 날’과 정수정의 ‘애비규환’까지 신선한 작품들이 오는 12일 개봉한다.

■ 이혼+혼전임신..편견 딛고 일어서는 캐릭터

‘내가 죽던 날’과 ‘애비규환’은 각각 이혼과 혼전임신 등 쉽게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작품 속 설정으로 배치했다. 각 작품들의 주인공은 편견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를 비롯해 박지완 감독까지 여성들이 의기투합한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다.

영화는 초반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를 쫓는 형사 현수(김혜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미스터리 추리극 설정을 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며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성 드라마가 된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이혼 등으로 동료들의 편견 속 척박한 삶을 살아가던 현수는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가 된 10대 소녀 세진의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삶의 난관에 부딪힌 이들을 향한 위로다. 김혜수는 “실제 내가 영화를 선택했을 때 시기적으로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좌절감이나 상처들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누군가가 됐든 모두 원지 않게 남들이 모르는 상처나 절망 고통 깊게 겪으면서 살아가지 않나. 요즘처럼 많이 힘들고 지치는 시기에 극장 오기 쉽지 않겠지만 조금 따뜻한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촬영했다”라고 설명했다.

박지완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여성 서사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여성 서사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런 의미를 발견해주셔서 저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라고 했다.

걸그룹 에프엑스 크리스탈은 배우 정수정으로 여성 서사를 이야기한다. ‘애비규환’에서 5개월 차 임산부를 연기하며 도전에 나섰다. 영화는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 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서는 코믹 드라마를 그린다.

정수정은 이번 영화를 통해 당당하고 진취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며 현대사회 속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1994년 생인 정수정은 “실제로 토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한번 결심하면 후회없이 끝까지 가고, 선택한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려 한다”며 “그래서 극중 토일의 선택을 믿고, 나 역시 토일 같은 상황이었으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런 모습도 예뻐 보였다”라고 했다.

90년대생 여성 감독 최하나는 이혼가정과 혼전임신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연출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 감독은 “우리 가족도 그렇고 주변 가족들을 봐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가족 이야기를 담아내면 많은 분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혼을 굉장히 많이 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실패한 결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데, 오히려 자기 삶의 오류를 인정하고 고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불행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들로 편견 없이 바라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 F등급 영화의 이유있는 강세

최근 개봉을 앞둔 F등급 영화의 공통분모는 관객들의 공감을 자극하는 스토리와 신선한 설정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영화계에서 흔히 봤던 소재를 다시 우려내지 않고 참신한 소재로 승부를 걸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코로나19 속 F등급 영화의 활약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9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영화 49편 중 여성 감독은 5명이었다. 2017년 0명, 2018년 1명(탐정: 리턴즈)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개봉 영화 전체에서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22편 중 여성 주연 영화는 12편(54.5%)에 달했다.

수익으로도 큰 성과를 냈다. 정유미 주연의 ‘82년생 김지영’은 현대사회 속 성차별과 여성을 향한 편견을 다루며 36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직장 내 로맨스를 현실적으로 그려내 호평 받은 ‘가장 보통의 연애’ 역시 292만 명의 선택을 받으며 흥행했다.

김혜수는 “작품 속 외적으로 어필됐던 여성이 영화적으로 다듬어진 캐릭터로 소개되는 작품이 늘고 있다. 그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고무적이다”라며 “박지완 감독을 비롯해 많은 여성 감독이 도전을 하고 있는데 이후에는 여성 감독으로 소회가 아닌 잘 준비된 영화인으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많아지길 바란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사진=해당 영화 포스터 및 스틸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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