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코로나19 치료제·백신에 대한 시장 기대감 악용 우려
알버트 보울라 화이자 CEO.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승훈 기자]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테마 등으로 기업가치 상승 후 자기주식을 처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 투자재원 마련을 위한 것도 있지만, 대규모 차익 실현을 통해 주가 폭락을 부채질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기업가치가 상승했을 때 오너 등이 자기주식을 대규모로 처분하는 것은 해당 회사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는 물론, 산업계 전반의 긍정적인 투자에 대한 인식 저하로 이어질 우려마저 나온다.

 

화이자 CEO, 보유주식 익절 논란

11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자료를 인용해 알버트 보울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일 560만달러(약 62억원)어치의 자사 주식을 팔았다고 전했다.

이날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함께 개발 중인 백신이 임상시험에서 코로나19를 막는 데 90%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에 화이자 주식은 같은 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장중 15% 이상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보울라 CEO가 팔아넘긴 화이자 주식은 13만 2508주다. 매도가는 주당 평균 41.94달러로 52주 최고가(41.99달러)에 가깝다.

화이자 대변인은 CEO의 주식 매각에 대해 “지난 8월 제정된 ‘Rule 10b5-1’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Rule 10b5-1’는 상장기업 내부 인사가 기업에 대해 보유한 주식을 정해진 가격이나 날짜에 매각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중간 임상발표 시기를 주식 매각시점에 맞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악시오스도 "매각은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이뤄졌지만, 여론은 그렇게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네티즌들은 "백신이 나오면 주식이 폭등 할텐데 미리 판다는건 약효가 없다는 뜻이 아니냐" "주가조작, 코로나19 효능 거짓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화이자 CEO의 주식 처분으로 코로나19 백신 효과 발표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신풍제약 피라맥스 전용공장. /연합뉴스

 

국내 자기 주식 처분 명과 암

국내 기업들도 자사주를 대량 매각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신풍제약의 경우 자체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주목받으면서 7월부터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7240원에서 올해 들어 무려 23배가량 폭등했다.

이후 신풍제약은 지난 9월21일 장마감 후 자사주 128만9550주를 해외 투자자에게 직접 팔았다. 매각 금액은 2153억5485만원으로, 지난해 순이익(18억원)의 120배 규모다.

신풍제약 측은 이에 대해 “생산설비 개선 및 연구 개발 과제를 위한 투자 자금 확보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신풍 제약입장에서는 이번 매각 결정이 신약개발 등 자금 확보에 긍정적이지만 투자자 사이에선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보통 자사주 매각은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각하는 시점은 주가가 가장 높은 때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풀이된다.

실제 자사주 매각 소식 다음 날 신풍제약은 전 거래일보다 14.21% 내린 16만6000원에 마감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개인이 주식을 매도하는 것이 합법적이고 자유일 수는 있지만 장기간 개발해야 성공할 수 있는 신약개발 자체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거나, 묵묵히 개발에 매진하는 개발사에게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은 것을 악용해 빈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개발 성과를 포장하고, 회사 가치를 과대포장해 주가를 올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면 산업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투자자도 이에 유의하고 기업 및 연구개발 역량의 가치에 기반한 건설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자기주식 처분으로 각 기업이 이를 필요한 곳에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기업 가치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 2015년 5월 자기주식 135만6918주를 정리하면서 112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오버행(짧은 시간에 주식 물량이 과도하게 풀리는 것) 이슈가 불거졌지만, EB 발행은 향후 기업가치 상승을 알리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됐다.

신재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시 "교환비율 100%는 사채권자들이 셀트리온 주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 교환사채 발행은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및 신약 개발사업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크게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EB 발행 2년 뒤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산업 성장과 함께 5배나 뛰었다. 이후 셀트리온은 코스닥 최고 우량기업에서 코스피 이전 상장을 거쳐 현재는 시가총액 39조를 넘어서며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편 셀트리온은 개발 중인 `코로나19` 항체치료제가 임상시험에서 4∼5일 이내에 바이러스를 사멸하는 효과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승훈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