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배우 김혜수가 영화 ‘내가 죽던 날’(12일 개봉)로 돌아왔다. 한 소녀의 실종을 추적하던 형사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내용을 그린 영화에서 형사 현수 역을 맡아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과거 모친이 지인들에게 13억에 달하는 거액을 빌리고 갚지 않아 지난해 ‘빚투’ 논란의 당사자로 지목 받으며 힘든 시기를 보낸 김혜수는 “위로를 받은 시나리오라 출연을 결심했다”라고 털어놨다. 실제로도 개인사의 아픔을 극복한 김혜수는 고단한 삶에 지친 캐릭터에 몰입한 연기를 펼쳤다. 힘든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그리며 관객들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했다.

-영화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

“시나리오가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읽기도 전에 제목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뭔가가 느껴졌다. 만나지 않은 사람 간에 느껴지는 연대감 같은 것들. 내가 느끼는 만큼만 보는 분들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다면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마음의 위로 같은 걸 느꼈다. 내가 느꼈던 위로처럼 영화를 만나는 관객들도 이런 마음을 느끼신다면 이게 바로 우리 영화의 목적이고 운이라고 생각했다.”

-극 중 연기한 현수는 어땠나.

“실제 현수의 마음이 이해됐다. 물론 이런 현수의 마음을 내가 표현이 되느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이 연기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무게를 느끼기 전에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현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악몽을 꾼다. 실제로도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는데.

“현수가 잠을 못 자는 걸 설명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실제로도 그런 경험이 있다. 꿈을 설명하는 부분이, 내가 늘 그 꿈을 꾸고 현실로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었다. 매번 반복되는 꿈에 매번 반복되는 감정이었다. 꿈에서 내가 나를 본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저기 죽어있는 걸. ‘치워주지 치워라도 주지’ 이 마음이 실제 꿈에서 느낀 감정이다. 정말 그대로였다. 그게 현수의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에 용이했던 것 같다. 관객들에게 현수가 잘 느껴지기 위한 과정이었다. 1년 넘게 꿨던 꿈이지만 지금은 꾸지 않는다.”

-어떻게 극복했나.

“정직하게 말하면 극복했다고 할 수 없다. 뻔하지만 인정할 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뭔가를 할 때 ‘극복한다’ ‘내가 뭘 해야 하지?’ 이런 게 없다. 그냥 내버려 둔다.”

-촬영을 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는데 촬영 후에 마음속에 남은 장면이 있나.

“좀 많다. 마지막 순천댁(이정은)과의 만남도 그렇고 민정(김선영)과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그렇다. 또 내가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순천댁과 세진(노정의)의 장면 중 ‘아무도 안 남았다’는 세진의 말에 순천댁이 ‘네가 남았다. 인생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어’라는 대사가 세포 하나하나에 남은 것 같다.”

-현수의 대사 중에 기억에 남았던 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이 일이 없던 일이 되는거야’라는 대사가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만든 일도 아니고 전혀 예상하지 않고 원치 않은 일인데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어쩌다 이 일이 생긴 거지?’하다 자책을 하게 된다. 결국은 돌이킬 수도 없고 시간을 돌릴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모든 게 다 연결돼 있는 것 같다. 주변에 만나지 않는 연대가 있는데 그게 다 연결돼있는 것 같다. 나의 말이 이 사람의 말이고, 배역들의 말이 내 말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저건 지금 내 얘기야. 내 얘기를 현수가 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하실 것 같다.”

-은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는데.

“많은 배우들이 사실 작품을 하고 나면 하는 생각인 것 같다. 늘 있는 마음이다. 이걸 해내기까지 얼마나 기묘하게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된다. 거기에 따른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 전제가 되지 않는 현장은 없다. 우리가 사실 감당을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게 된다. 감독, 제작자는 더하겠지만. 배우라는 말의 한자 유래가 ‘배(俳)’는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가 붙어서 만들어진 것이고, ‘우(優)’는 뛰어나다는 뜻이다. 사람이 아닌 일을 뛰어나게 해야 하는 일이 배우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말이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정말 경이롭고 두렵고 신비롭고 또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데뷔한지 34년 차다.

“어릴 때 우연히 시작하게 돼서 정신 없이 낯선 서계에서 어른들 틈에 있다 보니 10대에서 20대가 됐다. 20대가 되면서 뒤늦게 사춘기가 오듯이 ‘이 일이라는 게 뭔가’ 생각하게 됐다. 20대 때 심적으로 많이 방황을 했던 것 같다. 나의 학창시절 20대의 청춘을 이 일을 하면서 시간을 바친 게 너무 아까웠다. 나를 향한 평가보다, 나 스스로 단지 어른들 틈에서 조금 더 창의적인 사람들 틈에서 내가 신나고 즐거웠다. 이것만으로 되나 싶었고 뭔가 한 번 해보자 그런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많은 벽에 부딪혔다. 내 한계를 들여다봐야 하고 인정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과 나를 원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고 거기에서 오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렇게 30대를 보냈다. 40대를 앞두고 만 40세가 되면 정말 그만이다 나도 이제 내 삶을 살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40대에 진입하고 나니 내 삶과 배우로서 연예인으로서 삶을 분리한다는 게 의미가 있나 싶더라.”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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