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김기덕 감독이 지난 11일 라트비아 현지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60세. 코로나19로 유족은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된만큼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에 장례절차를 맡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2018년 ‘미투’ 운동 가해자로 지목된 후 한국 영화계를 떠나 해외에서 활동한 김 감독은 갑작스러운 비보로 생을 마감했다.

■ 사인은 코로나19 합병증..해외 활동 중 사망

러시아 매체는 이날 김기덕 감독이 코로나19로 인한 합병증으로 라트비아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김 감독은 최근 라트비아에 체류 중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치료 중 합병증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감독은 최근 러시아, 카자흐스탄에서 활동을 펼쳐왔다.

김 감독과 알고 지낸 러시아의 유명 영화감독 비탈리 만스키는 이날 자국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김 감독 사망 소식을 전하며 “내가 알기론 그가 리가 병원에서 11일 새벽 1시 20분께 숨졌다”라고 말했다. 라트비아에 체류 중인 만스키 감독은 “김 감독이 라트비아에서 부동산을 구매하고 영주권을 얻으려 했으며 이 목적 때문에 현지에 왔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현지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져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다른 나라로 옮기는 문제를 알아보던 중 비보를 접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감독은 신부전(콩팥기능상실증)과 코로나19가 겹치며 건강이 매우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2018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후 그 해 말부터 해외에서 줄곧 생활해왔다. 지난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올해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어 영화 ‘디졸브’를 개봉하기도 했다. 국내 영화 관계자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은 채 해외 활동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고인의 비보에 자신의 SNS에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환갑일 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라는 글을 적었다. 이어 “한국 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다”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 3대 영화제 휩쓴 ‘거장’ VS ‘여성 혐오·폭력적’ 감독

김 감독에 대한 대중과 영화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세계 3대 영화제인 칸·베니스·베를린에서 수상한 유일한 한국 감독으로 ‘거장’으로 평가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 혐오적, 폭력적인 성향의 작품을 만든 감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기술을 취득, 전수 학교와 전자 공장을 다니며 성장했다. 1986년부터 화가로 활동했고 동시에 신학교를 다녔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간 프랑스와 유럽을 다니며 회화 공부를 하던 중 영화 ‘양들의 침묵’(1990)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감독의 꿈을 키웠다.

1992년 귀국 후 1996년작 ‘악어’를 통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2004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사마리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연이어 감독상을 수상했다. 또 영화 ‘아리랑’으로 2011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 2012년엔 영화 ‘피에타’로 베네치아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뫼비우스’(2013) ‘그물’(2016),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2018) 등을 연출했다.

주로 어두운 메시지를 담은 작품 세계를 표현한 김 감독인만큼 호불호는 엇갈려왔다.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감독이라는 의견과 여성 착취적이며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영화 ‘섬’ (2000) ‘나쁜 남자’(2002) 등은 여성 성적 대상화, 선정성과 폭력으로 혹자의 혹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베니스 상을 수상한 ‘피에타’ 역시 근친상간, 존속살해 등 패륜적 소재로 논란을 일으켰고 ‘뫼비우스’는 근친상간과 성기 절단 장면 등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줄곧 만든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정받은 감독이기도 하다.

작품의 흥망성쇠를 떠나 한국영화계에서 회자되는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2018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뒤 이미지 추락을 피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사망 비보에도 영화계에서 공식적인 애도나 추도사가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생충’ 번역가인 달시 파켓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2018년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을 다룬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가르치는 것을 그만뒀다. 누군가가 현실 세계에서 이토록 잔혹한 폭력을 저질렀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일 거다. 그가 천재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고, 천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영국 출신 평론가이자 이경미 감독의 남편인 피어스 콘란도 SNS에 “김기덕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고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그가 촬영장에서 저지른 끔찍한 행동에 대한 언급 없이 위대한 예술가가 죽은 것에 대해 애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슬펐다”라며 “영화계에 대한 그의 공헌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의 괴물 같은 성폭력의 희생자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 감독의 시신은 라트비아에서 화장한 뒤 국내로 송환될 예정이다.

사진=OSEN, 연합뉴스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