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제네바협정에 따라 북한에 원전 착공했지만 2006년 무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수없이 북한 원전 건설 언급...업계 주도로 정부 건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 발언 이후 관련 유관단체들의 대북 전력사업을 구상하는 회의가 봇물을 이룬다. 사진은 2014년 11월 전기산업진흥회가 주최한 '제1차 전기산업 통일연구 협의회' 모습.(사진=양세훈 기자)

[한스경제=양세훈 기자] 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는 논란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미 북한 원전 사업은 1994년 김영삼 정부시절부터 추진됐으나 중단됐던 사실이 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시절에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다양한 건의가 이뤄져 왔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연 이 문제가 논란이 될 만큼 특별한 사항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당사자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적극 해명에 나서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 되는 것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 정쟁(政爭)화에 따른 국론 분열이다.  

1일 전력업계 등에 따르면 북한 원전 건설은 1994년 김영삼 정부시절에 시작된다. 당시 남·북한 비핵화를 전제한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 원전 2기를 건설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어 1997년 8월 함경남도 신포시에 원전 착공이 이뤄졌지만 2002년 전환점을 맞는다. 그해 10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 측 발표에 따라 사업 재검토가 결정된 것으로 이후 우여곡절 끝에 2조원 가까운 비용을 투입하고도 결국 2006년 6월 신포 원전 건설은 공식무산 됐다.

2010년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원전 한국’에 고무돼 있던 시절이라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 입에서도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자는 발언까지 나왔을 정도다. 

2014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한마디로 대북사업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통일 대박론에 따라 정부 유관기관이나 민간 차원에서의 대북 전력사업을 구상하는 회의가 봇물을 이룬다. 남북관계가 냉전임에도 불구하고 언제올지 모를 남북통일에 대비해 북한의 낙후된 전력망 회복이 급선무라는 점에 관련 업계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전기공사협회에 전기분야 통일위원회가 발족됐고 전기산업진흥회 역시 ‘전기산업 통일연구 협의회’를 발족, ‘통일대비 남북한 통합 전력산업 운영체제이라는 비전 아래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또한 전기연구원에서는 남북한 전력협력을 위해 ▲배전표준화 시범사업 ▲개성공단 2단계 확장 ▲해주지역 공단으로 전력공급 ▲남북한 공통전력단지 조성 ▲평상산업단지 조성으로 평양 내 발전소 개보수 ▲에너지특구로 단천특구지역 전력공급(별도사업으로 개발) 등의 구체적인 북한 전력인프라 확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업계 한 관계자는 “북한의 전력부족은 북한 경제의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어 어떻게든 남한에 전력지원을 요청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자칫 중국이 북한 전력 사업을 선점할 경우 ‘통일대박’이 ‘중국대박’이 될 수도 있다는 기회와 위기감이 교차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남북한 전력 기자재 표준안을 제정하는 등의 논의와 함께 북한 금호지구(신포) 일대에 원전 건설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종종 제기 돼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 4월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에는 분위기가 더 후끈 달아오른다. 원자력업계는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원전 건설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당시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북한은 송전선이 매우 열악하고 수력,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취약성 때문에 대용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필수적”이라며 “미국도 북한이 핵폐기를 약속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로 원전 건설 지원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산업부의 해명도 맥을 같이 한다. 신희동 산업부 대변인은 “북한 원전 관련 문서는 에너지 분야 협력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산업부 내부 자료로 확인됐다”며 “보고서 서문에는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으며, 내용도 북한 지역 뿐 아니라 남한 내 여타 지역을 입지로 검토하거나, 남한 내 지역에서 원전 건설 후 북으로 송전하는 방안을 언급하는 등 그야말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아이디어 차원의 다양한 가능성을 기술하고 있어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우려되는 부분은 이미 30년간 수많은 논의가 이뤄진 북한 원전 건설이 정쟁화되는 부분이다.  2014년 '통일은 대박' 발언한 이후 남북 경제협력의 편익을 부각하는 보도들이 쏟아졌지만 정권이 바뀌자 정부의 북한 원전 문건이 이적행위가 돼버리는 정반대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북한 원전 건설은 업계에서 이미 꾸준하게 정부에 제기해온 사업이고 더구나 실제 착공에 들어서며 현실화 됐던 사업이라 관련 보고서는 수없이 재생산 돼왔기에 논란이 될 만큼 특별한 게 없다”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시절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자고 주장하던 모든 협·단체와 정부유관기관들이 모두 이적행위를 해온 것이냐”고 반문했다.

한편 한국형 경수로 원전은 미국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어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외지원건설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더라도 지금의 열악한 북한 전력망을 고려할 때 원전 운영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양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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