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이재영(왼쪽)과 이다영. /KOVO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기자는 한때 입시체육을 준비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했던 기계체조를 전공 삼아 체육교사가 되고자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농구 대회에 출전했고, 체육 시간만 되면 시범을 보이는 조교 임무를 수행해 체육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입시체육을 준비했던 것이다.

수 개월간 체대입시학원을 다니며 그 세계 군기와 관련한 많은 무용담을 들었다. 먼저 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형들은 음주와 얼차려로 찌든 일상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모 대학교 체육교육과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기자는 결국 체육교사 대신 체육부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즐기던 스포츠와 고된 입시 체육의 괴리를 뼈저리게 느꼈던 탓이다. 선수가 되기 위한 엘리트 체육계는 오죽하랴. 세상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기자가 입시체육을 준비했던 십수 년 전만해도 체육계 폐쇄성은 더 심각했다.

체육계에서 구타는 너무 흔해 어지간한 일로는 뉴스에도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번에 터진 프로배구계의 학교 폭력 사태도 그때처럼 폐쇄적인 시스템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합숙 시스템과 가족 권력이 이재영-이다영(이상 25) 쌍둥이 자매를 그 세계의 ‘신(神)’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프로배구 선수들을 인터뷰 하다 보면 상당수가 우연한 계기로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는 점을 알고 놀라게 된다. 단순히 키가 컸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웠거나, 학교 배구부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다고 해 따라가다가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는 전현직 선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포지션에서 한국 최고라 불리는 A 전 감독도 그랬고, 현재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여자 선수 B 씨도 그랬다.

순수한 생각으로 배구 선수의 길에 들어 섰다가 강한 위계질서와 학교 폭력을 맞닥뜨리고 중도 하차한 꿈나무들이 많다. 엘리트 선수의 길을 모색하다가 지금은 모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고 있는 지인은 이번 배구계 학교 폭력 사태와 관련해 “곪은 게 터졌을 뿐이다. 수위는 다르겠지만 합숙을 하는 다른 종목에서도 분명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각에선 이다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선배 저격 글’들을 부각시키며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표현들을 한다. 그러나 본질은 SNS가 아니다. 학교 폭력의 뿌리는 분명 ‘폐쇄성’이다. 지금 부각돼야 할 문제는 SNS가 아니라 바로 폐쇄성이며, 그걸 없애기 위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쌍둥이 자매는 중학교 시절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자매의 어머니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에서 세터를 맡았던 김경희(55) 씨다. 그 사실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뒷배경이 됐고 권력이 된 셈이다.

합숙의 장소인 숙소는 가해자와 피해자에겐 너무 다른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다. 학교 폭력 피해 선수에겐 지옥이 되고, 가해 선수에겐 궁궐이나 다름없다.

자아가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어린 시절 학교 폭력의 피해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 시절의 끔찍한 기억은 피해자의 머릿속에 ‘무기한’ 남을 수 있다. 이번 가해 선수들을 향한 구단과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징계에도 ‘무기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적어도 수년간은 징계가 풀리지 말아야 한다. 여론이 잠잠해져 가해 선수들의 조기 복귀가 이뤄지지 않도록 배구계에 시선이 모아져야 할 때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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