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오른쪽)-이다영 자매의 학교폭력으로 촉발된 '학폭 미투' 태풍이 거세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여자 프로배구가 '침묵의 카르텔'을 깼다. 겨울스포츠 최고의 인기스타에서 학교폭력(이하 학폭) 가해자로 전락한 이재영·다영(25·이상 흥국생명) 쌍둥이 자매의 학폭 파문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이른바 '학폭 미투'가 배구계를 넘어 야구와 농구 등 다른 종목은 물론 연예계 등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연이은 학폭 태풍 속에 가려진 스포츠 강국 한국의 그늘을 되짚어 봤다.

◆쌍둥이 자매의 몰락…체육계 전반으로 번지는 학폭 미투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는 10일 과거 학폭 전력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폭로된 뒤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결국 15일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으로부터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1998년 서울올림픽에서 주전 세터로 뛰며 '2대 연속 국가대표'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 잡았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와 모친 김경희 씨도 함께 '학폭 태풍'의 중심에 섰다. 

쌍둥이 자매는 몰락은 그동안 '침묵의 카르텔' 속에 독서벗처럼 퍼져있던 우리나라 체육계의 폭력의 단면을 수면 위로 끄집어 냈다. 이들 폭로가 뇌관이 돼 송명근(28), 심경섭(30·OK금융그룹) 등 남자선수의 학교폭력 전력까지 드러났다. 이들 역시 국가대표팀에서 무기한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프로야구와 프로농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학폭 미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학폭이 일부 종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체육계 전반에 암세포처럼 살아있다는 방증이다. 프로야구에서는 이미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이 2018년 학폭 문제로 5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또 지난해 NC 다이노스는 1차 지명했던 김유성의 학폭 문제가 불거지자 지명을 철회했고, 김유성의 프로 진출은 좌절했다. 이 밖에도 현재 한화 이글스 등 배구발 학폭 미투에 이름을 올린 선수를 보유한 KBO리그 구단은 진상 확인에 진땀을 빼고 있다. 

프로농구 역시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 많아 난감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등 다른 종목 역시 피해자의 폭로에 따른 잠재적인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학폭 미투 왜 계속되나

학폭 미투는 왜 계속될까. 우선 학폭을 바라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확연한 온도 차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95만 명 중 가해 경험이 있다는 9300명은 가해 이유로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2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화풀이 또는 스트레스 때문'(8.3%)과 '강해 보이려고'(5%)와 같은 이유로 폭력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학폭을 경험한 피해자 2만6900명 중 17.6%는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장난으로 던진 돌(가해자)에 개구리(피해자)는 맞아 죽는 옛말과 학폭 미투 상황이 겹쳐 보인다. 

학폭 태풍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정의'와 학폭 미투가 궤를 같이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정효 서울대 외래교수는 20일 TBS와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은 학창 시절 때리고 괴롭혔던 동급생이나 선배가 스타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게 스포츠가 말하는 정의인가'하는 문제 의식을 갖고 학폭 미투를 이어갈 것"이라면서 "심석희·최숙현 선수를 둘러싼 체육계 권력문제가 점차 사적 영역으로 확대돼 나가고 있다. 예전의 사건들이 지도자와 선수 관계에서 촉발됐다면 이번 학폭은 선수와 선수, 선수와 동료 학생과 관계로 부조리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당분간 운동선수를 둘러싼 학폭 미투운동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계속되는 '학폭 미투' 운동 속에 이른바 '최숙현법'이 19일부터 시행됐다. /연합뉴스

◆정부 "학교 운동부 징계이력 통합관리"

이다영·재영 쌍둥이 자매로 촉발된 학폭 문제에 대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운동부 징계이력 통합 관리' 등의 대책을 내놨다. 

문체부는 16일 "교육부 등 관계 당국과 협의해 학교 운동부 징계이력을 통합 관리해 향후 선수 활동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한체육회 국가대표선발규정 제5조에 따라 (성)폭력 등 인권 침해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 국가대표 선발을 제한한다"며 "향후 관련 규정 등을 통해 학교체육 폭력 예방 체계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때마침 19일부터 이른바 '최숙현법'도 시행됐다. '최숙현법'은 스포츠 인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 및 시행령, 시행규칙으로 이번 대책과 함께 학폭 예방 및 대책으로 시행된다. '최숙현법'의 핵심 내용은 ▲체육인에게 인권침해·비리 즉시 신고의무 부과, 신고자·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직권조사 권한 명시, 조사 방해·거부 시 징계 요구 등 스포츠윤리센터 조사권 강화 △가해자에 대한 제재 및 체육계 복귀 제한 강화 ▲상시적 인권침해 감시 확대 및 체육지도자 등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 ▲체육계 표준계약서 도입 및 실업팀 근로감독·운영관리 강화 등이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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