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대웅 기자]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2021시즌 KBO리그다. '한 이닝 멀티 히트 3도루'와 '선발 한 이닝 61투'를 비롯해 투수 겸업 '야투수' 전성시대까지. 만화였다면 현실성 없다고 웃고 넘겼을 진짜 만화 같은 실사판 KBO리그의 이색적인 장면들을 살펴봤다.

KBO 최초 한 이닝 멀티 안타 3도루 기록을 작성한 김지찬. /연합뉴스

◆ 20세 김지찬, 사상 첫 1이닝 멀티안타 3도루 달성
 
프로 2년 차로 올해 스무 살인 삼성 라이온즈의 김지찬(20)은 KBO리그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했다. 17일 롯데 자이언츠와 원정 경기에 1회에만 2안타 3도루를 기록지에 남겼다. '한 이닝 3도루'는 1999년 신동주(삼성) 이후 무려 22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다. 여기에 안타 2개를 더 곁들인 건 김지찬이 최초다. 
 
김지찬은 롯데 선발 앤더슨 프랑코(29)와 포수 김준태(27) 배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시속 154km의 빠른 공을 갖춘 프랑코지만 투구 동작이 길고 주자 견제 능력이 떨어진다. 포수 김준태는 올 시즌 도루 저지를 단 한 차례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1회 선두 타자로 나서 내야 안타로 출루한 김지찬은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이어 타자가 일순하며 1회 다시 타석에 들어 서 안타로 출루한 뒤 2루와 3루 베이스를 연이어 훔쳤다. "아주 당돌한 선수." 허삼영 삼성 감독의 평가다. 
 
김지찬이 대기록으로 포효한 반면 롯데 선발 프랑코는 1회에 아웃카운트 2개만 잡고 안타 6개, 볼넷 3개를 내주며 강판 당했다. 특히 1회에 공 61개를 던지며 역대 한 이닝 최다 투구 신기록을 수립했다. 종전 기록은 1990년 최창호(태평양), 2006년 심수창(LG)의 59구다. 최창호와 심수창은 모두 1이닝을 채웠지만 프랑코는 3분의 2이닝만 소화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17일 사직 삼성전 7회초부터 추재현, 배성근, 오윤석(왼쪽부터) 등 야수들을 연속으로 마운드에 올려 경기를 마무리했다. /롯데자이언츠 제공

◆ '야투수 전성시대' KBO 첫 '단일 경기 야수 3인 등판'
 
0-12로 크게 뒤진 7회 1사 후 허문회(49) 롯데 감독은 눈을 의심케 하는 선택을 했다. 7회부터 2.2이닝을 야수들에게 맡겼다. 추재현(22), 배성근(26), 오윤석(29)으로 이어지는 패전 처리반(?)은 도합 49구를 던지 무실점으로 경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KBO 역사상 첫 단일 경기 야수 3인 등판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경기 운영에 허문회 감독은 "삼성에게 좀 미안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선발 프랑코가 1회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고 강조했다. 
 
'야투수'의 포문을 연 건 카를로스 수베로(49) 한화 이글스 감독이다. 수베로 감독은 10일 대전 두산 베어스와 경기에서 1-14로 뒤진 9회초 3루수 강경학(29)을 투수로 깜짝 투입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연속 안타를 맞으며 4실점했다. 강경학에 이어 정진호(33)가 마운드를 넘겨 받았고, 이날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한화는 1-18로 대패했다. 
 
KBO리그에서 야수의 투수 기용은 흔한 일이 아니다. 2009년 LG 트윈스 최동수, 당시 SK(현 SSG) 최정(34), 2019년 KT 위즈 강백호(22), 지난해 KIA 타이거즈 황윤호(28), 한화 노시환(21) 등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흔한 일이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승패가 기울었을 때 불펜 소모 없이 경기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팬서비스로 인식한다. 2005년 단 한 번뿐이었던 야수의 투수 기용은 2013년 14번, 2018년 75번, 2019년 90번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해도 5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외야수 카아이 톰(27)이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7점 차 뒤진 9회 투수로 등판해 시속 92km짜리 아리랑볼로 무실점 투구를 했다. 보수적인 KBO리그에서 '야투수'가 또 다른 볼거리로 자리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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