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쿠팡에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전‧현직 근로자의 폭로가 계속되고, 쿠팡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 미국 나스닥 상장 신화를 썼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경기 이천물류센터 화재 사고에서 촉발된 문제 제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존중과 공동체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올해 3월 초만 해도 쿠팡은 신데렐라처럼 조명됐다. 한국기업이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것도 화제였지만, 72조원이란 기업 가치는 기록적이었다. 이에 힘입어 5월 한때 쿠팡의 시가 총액은 130조원에 달했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475조원이다. 또 SK하이닉스 88조원, LG화학 62조원, 현대차 49조원, 포스코 33조원, KB금융 24조원 순이다. 10년 남짓한 신생 기업이 삼성전자 3분의 1, 다른 초우량 기업을 넘어섰으니 놀랍다.

한데 최근 쿠팡을 대하는 여론은 싸늘하다. 열악한 근로환경이 도화선이 됐다. 장광씨 부부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일용직으로 일하다 숨진 아들의 죽음을 통해 쿠팡에 내재된 문제점을 알리고 있다.

사건 초기 쿠팡은 고인이 주 44시간 일했고, 노동 강도가 낮은 일을 해왔다며 산재 인정을 거부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판정은 달랐다. 평균 주 58시간, 사망 직전에는 62시간을 일하며 죽음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쿠팡 근로자가 연이어 쓰러지고, 허술한 대응이 이어지자 쿠팡을 외면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19일 트위터에는 ‘쿠팡 탈퇴’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17만여 건 올라왔다. 다른 SNS와 커뮤니티에도 쿠팡 탈퇴 인증 샷이 앞 다퉈 올라왔다.

화재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쿠팡이 보여준 대처가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쿠팡 김범석 의장이 사고 직후 대표 이사를 포함 모든 등기이사를 사임한 것도 부정적 여론에 불을 댕겼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편하게 살고 싶지 않다” 여론은 쿠팡 문제를 통해 로켓 배송, 새벽 배송으로 대표되는 배송 시스템에 대해 돌아보자는 논의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새벽 배송을 이용한 소비자들은 배송 시스템 전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장씨 부부도 “값싼 편리함을 누리는 동안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며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시작은 쿠팡이었지만 ‘총알 배송, 새벽 배송이 꼭 필요한가’라는 사회적 논의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육아나 장시간 노동으로 새벽 배송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새벽 배송은 2015년 마켓 컬리가 국내 첫 도입했다. 이후 쿠팡, 신세계·롯데·현대까지 가세하면서 배송 전쟁은 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택배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오토바이 배달원도 숱하게 죽거나 다쳤다. 어찌 보면 원시적인 근로환경은 소비행태와 연관성이 있다. 마트에 나가 직접 장을 보자는 움직임은 이 때문이다.

쿠팡은 ‘로켓 배송’과 ‘쿠팡 맨’을 앞세워 대표적인 e커머스 기업으로 떠올랐다. 나스닥 상장을 즈음해선 세계적인 물류 기업 아마존과 알리바바에 비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악재가 이어지면서 배송 시스템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에 단초를 제공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누군가는 생명을 담보로 새벽 거리를 달리고 있다면 비인간적인 소비 행태라는 반성이다.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자는 공정무역과 착한소비 연장선상에 있다.

불가피함을 주장하는 이들은 근로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총알 배송·새벽 배송이 문제가 아니라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매 운동은 자칫 기업 도산과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환경 개선과 택배 기사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보완하자고 제안한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생활 패턴을 감안할 때 배달 서비스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화재 사고 이후, 쿠팡 회원 24만 여명이 탈퇴했다는 보도가 있다. 쿠팡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 주지 못할 경우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존경받는 기업은 시가총액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근로자를 가족처럼 여기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가능하다.

ESG(환경, 사회적 가치, 지배구조) 경영은 실천적 방안이다. 쿠팡은 창사 이후 11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이제라도 공동체와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때다. 

소비자의 인식변화도 절실하다. 지난해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 62%는 ‘공동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소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가격이 저렴해도 비윤리적 기업의 제품이라면 구매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도 65%에 달했다. 성숙한 소비 의식을 엿보게 한다. 결국 좋은 기업을 만드는 책임도 소비자 역할에 달려 있다. 관건은 실천이다. “새벽 배송이 꼭 필요할까.”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