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준희 기자] 올림픽 정신 중 하나는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완성’이다. 신체적 약점이 있어도 세계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선수들의 모습은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이번 대회에서 인간의 편견에 도전한 선수들을 짚어봤다.

로럴 허버드. /연합뉴스

◆ ‘최초의 성전환 올림피언’ 로럴 허버드(43·뉴질랜드)

올림픽 최초 성전환 선수 허버드는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87㎏ 이상) 결선에서 인상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해 최종 실격 처리됐다. 1차 시기 120㎏ 실패 후 2차 시기에서 125㎏을 시도해 드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심판진으로부터 ‘노 리프트’ 판정을 받았다. 3차 시기에서 다시 125㎏에 도전했지만 들지 못했다. 인상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하면 용상 경기를 치를 수 없다.

 

105㎏급 남자 역도 선수로 활약했던 허버드는 지난 2013년 성전환 수술을 했다. 2015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성전환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면서 여성 선수로 자격이 주어졌다. 2017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24㎏, 용상 151㎏, 합계 275㎏으로 2위에 올라 대회 역대 최초 성전환 선수로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그리고 4년 후인 올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됐다.

 

아쉬운 결과에도 허버드는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 저의 올림픽 참가를 허가한 IOC에 고맙다”며 “IOC의 노력으로 올림픽 정신이 살아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스포츠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걸 IOC가 증명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탈리아 파르티카. /연합뉴스

◆ ‘외팔 탁구 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32·폴란드)

지난 2일 한국 탁구 대표팀과 단체전 16강에서 맞대결을 펼친 파르티카도 이목을 끌었다. 파르티카는 베테랑 다운 노련미를 앞세워 젊은 피로 구성된 한국을 몰아붙였다. 한국은 1, 2세트를 가져갔지만 파르티카의 활약에 3, 4세트를 내주며 어려운 승부를 펼쳤다.

 

그는 선천적으로 오른쪽 팔꿈치 아랫부분이 없이 태어난 외팔 탁구 선수다. 7살 때부터 탁구를 시작해 지난 2004년 아테네패럴림픽과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에서 장애 10등급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무대에는 2008년부터 출전하고 있다. 한쪽 손이 없어 오른팔이 접히는 부위에 공을 올려놓고 서브를 한다.

 

패럴림픽을 넘어 올림픽에서 경쟁할 만큼 그의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추교성(50) 한국 여자 탁구 대표팀 감독은 “파르티카가 저희가 공 치는 길목을 잘 지키고 있었다. 상대의 노련미에 어려운 경기를 했다”고 언급했다. 맞붙었던 신유빈(17·대한항공) 또한 “파르티카의 실력이 좋아서 저희가 어렵게 경기를 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날 한국에 패하며 올림픽 일정을 마무리한 파르티카는 홀로 남아 도쿄 패럴림픽 10등급 단식 5연패에 도전한다. 그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저희 대표팀은 모두가 예상한 것보다 나은 경기력을 보였다”며 “결과와 상관없이 저에게 날아온 모든 공과 열심히 싸운 점에 만족한다”고 웃음을 지었다.

니시아리안. /연합뉴스

◆ 58세 ‘탁구 할매’ 니시아리안(룩셈부르크)

신유빈과 41세 나이 차로 맞대결을 펼친 니시아리안도 ‘노장’이라는 편견을 딛고 관록의 스매싱으로 당당하게 맞섰다. 많지 않은 움직임에도 탁구대 구석으로 날카롭게 꽂아 넣는 공격은 일품이었다.

 

니시아리안은 중국 국가대표 출신으로 1991년 룩셈부르크 국적을 취득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이번 도쿄올림픽이 5번째 출전이다. 올림픽 역사상 나이가 가장 많은 선수다.

 

은퇴 권유를 뿌리치고 이어간 선수 생활에서 그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니시아리안은 신유빈에게 패해 대회 일정을 마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따뜻한 말로 응원해준 모두에게 감사하다”며 “2라운드에서 신유빈에게 졌다. 힘든 경기였다. (신유빈의 승리를) 축하한다. 앞으로 더욱 강해지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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