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여자골프에서 동메달을 딴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가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2020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경기에서 한국 선수 못지않게 눈길이 간 선수가 있다. 바로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24)다. 그는 긴장의 연속인 올림픽 무대에서 모두에게 귀감이 될 만한 여유와 품격을 보여줬다.

 

리디아 고는 대회 4라운드 18번홀(파4)에서 열린 은메달 결정 연장전에서 이나미 모네(22•일본)가 퍼트하는 순간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공이 홀컵에 들어가길 바랐다. 버디로 이어지지 않자 순간 무릎을 굽혔다 펴며 아쉬워했다. 경쟁자가 버디를 기록하면 자신은 은메달을 따기 어려워지는 상황이었지만, 상대 선수를 온몸으로 응원했다. 이례적인 장면에 김미현(44) KBS 골프 해설위원은 “상대방을 응원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며 리디아 고를 높이 평가했다.

 

모네가 파를 기록했고, 리디아 고가 보기를 냈다. 동메달을 확정한 리디아 고는 스코어카드를 적으러 갔을 때도 동료들을 배려했다. 금메달을 딴 넬리 코다(23•미국)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주는가 하면, 동메달을 놓친 4위 아디티 아쇼크(23•인도)를 향해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리디아 고는 경기 후 "제가 받은 트로피 중에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은메달은 뜻깊은 상이었는데, 동메달을 또 따게 돼 큰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투어 대회에선 항상 경기가 끝나면 1등이 누구인지만 알고 2, 3등은 좋은 성적임에도 아쉬움이 남았다"며 2, 3등에게도 메달을 주는 올림픽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강조했다.

7일 일본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4라운드 연장전에서 패한 리디아 고(오른쪽)가 이나미 모네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디아 고는 한때 박인비(33)를 능가한 세계 최정상 여자골퍼였다. 2014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해 2016년까지 10대의 나이로 무려 14승을 올렸다. LPGA 통산 16회(메이저 2회)나 정상에 오른 그는 2016 리우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사상 최초로 2개 대회 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고(故)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있으며,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노력이다”고 역설했다. 리디아 고는 도쿄올림픽에서 진정한 의미의 ‘올림픽 정신’을 보여줬다.

 

박세리(44)의 현역 은퇴식이 치러졌던 2016년 10월 어느 날. 19세 리디아 고가 ‘전설’ 박세리를 졸졸 따르며 연락처를 받고 식사 약속을 잡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리디아 고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세리 언니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럽다. 한국에서 태어난 제게 언니는 '히로인(Heroine•영웅적인 여자)' 같은 존재다”라고 웃었다.

 

그로부터 5년이 훌쩍 지났다. 2~3년간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올림픽에 나선 20대 중반의 리디아 고 역시 의심할 여지 없는 ‘히로인’의 모습이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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