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엄태화 감독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감독이다. 지난 2012년 미장센 단편영화제를 휩쓴 이 감독은 이듬해 잉여들의 삶을 그린 영화 ‘잉투기’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16일 개봉한 엄태화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가려진 시간’이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다.

“영화는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엄태화 감독을 만났다.

-‘가려진 시간’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주인공이 미래나 과거로 가는 이야기는 많았는데, 멈춘 시간에 대해 다룬 한국 영화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파도에 부딪히는 남녀가 마주치는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믿음, 희생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는데, 그래야 내 무의식이 더 잘 드러날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누군가를 믿기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가려진 시간’은 믿음에 대한 희망일수도, 반발일수도 있다.”

-‘잉투기’는 세상 밖에 나오길 두려워하는 잉여들을 다뤘다. ‘가려진 시간’ 속 캐릭터들도 사회의 주류가 아닌, 소극적인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어른이 되길 두려워하는 캐릭터들에 관심이 많다. 외로움을 느끼고, 그걸 아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잉투기’도 외롭기 때문에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그게 더 잉여들을 외롭게 만들지 않나. ‘가려진 시간’도 같은 맥락이다. 성민(강동원)이 멈춰진 세계에서 친구들을 하나 둘씩 보내며 외로움을 느끼지 않나.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캐릭터들에 관심을 느낀다.”

-강동원과 여주인공 신은수의 나이 차는 21살이다. 캐스팅 과정에서 고민하지 않았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강동원 배우가 너무 동안이라 그런 걸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소년 같은 이미지가 얼굴에 남아있다. 또 강동원 자체가 성민 역에 너무 몰입을 잘하니 나이를 걱정할 일은 없었다.”

▲ 엄태화 감독의 첫 장편연출작 '가려진 시간'은 의문의 실종사건 후, 시공간이 멈춘 세계에 갇혀 홀로 어른이 되어 돌아온 성민(강동원)과 그의 말을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 강동원의 첫 등장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리지 않나.

“정확히 40분 후에 강동원이 나온다.(웃음) 아역들이 연기를 잘 하면, 관객들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아역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줬다.”

-멈춰진 시간을 표현할 때 어떻게 공을 들였나.

“옥에 티가 없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인물이 눈을 깜빡이거나, 바람에 낙엽이 굴러가는 것 하나하나 신경 썼다. ‘엑스맨’같은 스펙터클함이 아니라 진지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재미를 느끼지만, 나중에는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진지하고 서정적인 영화라 관객들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잠깐 지루할 수는 있지만, 마지막에서 주는 깊이 있는 여운이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아직까지 (감독으로서) 배우는 중이다.”

-강동원과 신은수의 멜로 분량이 적었는데.

“시나리오 자체의 분량이 딱 그 정도였다. 더 오버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멜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더 좋은 장면들도 있다 배우들도 멜로 장면을 더 넣자고 어필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좋은 장면이 많다.”

-강동원에 비해 동생 엄태구가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이 많았다. 실제로도 힘들어하지 않았나.

“잘 표현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엄태구가 연기한 태식은 모든 걸 놓는 캐릭터다. 골목대장이던 태식이가 멈춘 세계에 갇히면서 유약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부들부들 떠는 손동작이나 그런 감정들을 잘 표현했다. 하시모토(‘밀정’ 배역명) 눈빛으로 잘해준 것 같다.”

-동생과 함께 일하면 어떤가. 좀 더 편한가.

“다른 배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장에 있을 때는 똑같다. 물론, 촬영하면서 친해지는 과정이 없어도 되니 편하다. 촬영 전에는 배우의 성향을 파악해야 하는데 동생이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이번 영화로 처음 만난 강동원은 어떤 배우였나.

“편했다. 우리 셋 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강동원이 말수가 그렇게 없는 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뭔가를 강요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무리 없이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잘 맞는 배우였다.”

-첫 장편 영화인데, 연출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말 편했다. 저예산 영화를 촬영할 때는 모든 걸 다 내가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 때도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여러 가지를 하게 됐다. 이번에는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하다 보니 좀 더 배우와 소통하고 작업할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흥행 걱정은 없나.

“내 신조가 ‘너무 기대하면 실망도 크다’다. 물론 감독으로서 책임감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관객에게 (작품을) 보여주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열심히 촬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차기작은 어떤 걸 하고 싶나. 같이 호흡하고 싶은 배우는.

"많은 걸 생각하고 있는데, SF호러물을 하고 싶다. 무섭거나 징그러운 작품을 잘 보지 못하지만, 만드는 건 좋아한다.(웃음) 같이 호흡하고 싶은 배우는 심은하 선배님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팬이다. 꼭 복귀하시길 바란다.“ 사진=이호형 기자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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