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경마 경기 모습. /한국마사회 제공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다크웹, 암호화폐 등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불법도박도 고도화되고 있다. ARF(아시아 경마연맹)는 지난해 전 세계 불법도박 규모를 전체 규모의 80%로 추정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봉쇄와 격리, 스마트폰·블록체인·암호화폐 등 IT 기술 발달로 시장 확대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규제 중심의 사행산업 정책이 한계에 봉착함에 따라 도박산업을 인정하고 합법화하는 네거티브 정책으로 전환 중이다. 구시대적 ‘규제’만을 외치는 것이 현재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의무 방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 국가’로 유명한 싱가포르 역시 예외는 아니다. 2016년 경마, 스포츠토토 등 3개 사행업종에 대해 예외적으로 온라인 베팅을 허가했다. 당시 싱가포르 내무부는 “예외 없는 전면적인 온라인 베팅 규제는 오히려 그 수요가 불법시장으로 유입되어 색출이 어렵고, 관련법의 무력화를 초래한다”며 “예외적인 허용 정책이 베팅시장의 규모를 관리하고 중독을 완화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경마 선진국들은 합법 경마 시장 규제를 철폐해 불법도박 이용자들을 양지로 유인한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온라인 경마를 도입할 당시 싱가포르 공식 스포츠 베팅 및 복권사업자인 싱가포르 풀스는 “도박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온라인으로 전환된 불법 도박 활동의 법질서 문제와 사회적 결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 생태계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온라인 경마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들이 온라인 경마를 비롯해 도박의 양지화를 앞다퉈 시행하는 이유가 있다. 합법도박은 중독치료와 경로추적 등 이용자 보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행산업 감독위원회에서 발표한 제3차 불법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합법사행산업 대비 불법도박의 중독 유병률은 8.1%에서 25.1%로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정부는 도박 이용자들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유인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불법시장으로 들어가는 세수를 합법시장으로 가져올 수 있어 보다 많은 세수 확보로 사회적 편익 증가가 가능하다. 아울러 합법 경마 산업에 힘을 실어 자국 경마산업의 경쟁력을 확보와 글로벌 시장을 선점 효과도 낳을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에 온라인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합법 온라인 베팅시장이 열린 후 불법도박 시장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2008년 온라인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한 이탈리아와 2010년 허용한 프랑스는 해당 연도를 기준으로 합법과 불법도박 시장 규모가 역전됐다. 특히 프랑스는 불법도박 시장이 합법 시장의 3배 이상이었으나 온라인 베팅 합법화 이후 합법 시장이 불법 시장을 흡수했고, 합법화 2년 만에 불법도박시장 규모는 2009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불법 도박시장이 증가세였던 독일 역시 2011년 온라인 스포츠 베팅 합법 통로를 열자 불법 시장 규모가 4억5000만 달러에서 2억 1000만 달러로 절반 이상 급감했다. 

 

싱가포르 풀스는 불법도박에 대응하기 위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합법사행산업을 서비스하는 것을 존재 의의로 삼고 있다. 문제성 도박의 위험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망을 마련했다. 온라인 베팅을 위한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매장에 방문하거나 영상통화 등으로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연히 성인만 가입할 수 있으며 지속적인 신분 확인을 위해 환급 전에 본인 증명을 추가로 요청하기도 한다. 동시에 고객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보안에도 집중하고 있다.

 

싱가포르 풀스 이용자들은 자발적으로 월 입금과 베팅 한도를 조정할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이 설정한 한도의 50%, 75%, 100%에 도달하면 알람을 받는다. 이용자가 자신의 베팅 몰입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럼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베팅 참여를 조절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기·가족 배제(Self·Family-Exclusion)’ 제도도 존재한다. 싱가포르 풀스는 문제성 도박이 이용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해로운 것임을 강조하며 이용자 혹은 가족이 원할 시 최소 1년의 기간으로 베팅 배제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2000달러(약 237만 원) 이상 마권 미적중금에 대해 10%의 리베이트를 해주는 제도도 도입했다. 이용자 관점에서 합법 경마의 경쟁력을 높여 불법 경마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펼쳤다. 

 

모든 기술 발전에는 명암이 있다. 새로운 기술에는 낙관론과 회의론이 교차한다. 사물인터넷의 발달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지만, 반대로 해킹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도 악영향에만 천착해 규제만 외치는 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과 같다. 

 

시대가 새로워진 만큼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 기술이 발달한 ‘새 시대’에서 ‘과거’의 규제에 매여 있다면, 오히려 그 괴리로 인한 피해가 더 큰 것은 자명하다. 불법도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보하고 있다. 합법 시장이 언제까지고 예전의 모습에 머무르면 불법도박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뿐이다. 그 사실을 이해한 선진국들은 합법사행산업에 힘을 실어주며 새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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