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인혁을 추모하는 근조 리본을 단 삼성화재 선수들. /KOVO 제공
고(故) 김인혁을 추모하는 근조 리본을 단 삼성화재 선수들. /KOVO 제공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또 한 명의 선수가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김인혁은 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27세. 경찰은 "김인혁의 자택에서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어 현재까지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이 김인혁을 죽음으로 몰아 갔을까. 악성 댓글(악플)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추정이 나온다. 그는 생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 지난해 8월 자신의 SNS에 "십 년 넘게 들었던 오해들, 무시가 답이라 생각했는데 저도 지쳐요. 수년 동안 절 괴롭혀 온 악플들 이제 그만해주세요. 버티기 힘들어요. 이젠”이라고 쓰며 답답함을 토로한 바 있다

그는 구단과 갈등과 쏟아지는 악플로 인해 2020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여자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과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였다. 2020년 12월 인스타그램에 고유민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전하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들은 2020년 8월 고유민의 극단적인 선택을 계기로 뒤늦게 스포츠 뉴스 댓글 기능을 잠정 폐지했다.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던 스포츠계는 포털 사이트들의 댓글 폐지 결정을 대체로 환영했다. 하지만 운동 선수들을 향한 사이버 폭력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오히려 댓글 폐지 이후 악플러들의 공격은 더 악랄해졌다.

악플러들은 포털 사이트 댓글 기능이 폐지된 이후 SNS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 등으로 선수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그 수위는 선을 넘은 지 오래다. 건전한 비판을 넘어 인신공격을 하고, 선수의 가족까지 들먹이며 원색적인 비난을 가한다. 선수들을 향한 악플 세례는 경기력 여부와 상관없이 쏟아지기도 한다. SNS는 포털 사이트와 달리 최소한의 규제 장치도 없다. 선수들은 악플러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악플에 시달려도 혼자 끙끙 앓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에이전트나 소속사가 있는 소수의 스타 선수들만이 악플러들에게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 구단은 지난해 4월 SNS에서 손흥민(30)을 향한 인종차별적인 악플이 쏟아지자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당시 토트넘 구단은 공식 트위터 계정에 “우리 선수 중 한 명이 끔찍한 인종차별을 당했다. 우리는 EPL 사무국과 함께 전수 조사를 진행하여 가장 효과적인 조처를 할 것이다. 우리는 손흥민과 함께할 것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내 구단과 종목별 협회도 선수 보호를 위해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선수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도록 심리 상담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형사 고발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이고 강경한 법적 대응도 절실하다. '인격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릇처럼 일삼는 악플러들로부터 선수들을 지키기 위한 '방패'가 꼭 필요하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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