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공석 3개월째
지난해 7월 축구협회 정관 개정으로 위원장 권한 축소
김판곤 위원장은 정관 개정 6개월 만에 사임
김판곤 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KFA 제공
김판곤 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KFA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대한축구협회(KFA)가 공정한 절차와 투명성을 강조하며 2017년 야심 차게 신설한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지난해 갑작스러운 정관 개정에 따른 권한 축소 등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국내 축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1일 본지에 “지난해 7월 축구협회의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관련 정관 개정에 따라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의 권한이 대폭 축소됐다”며 “올해 1월 김판곤(53) 위원장의 사임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김판곤 위원장이 (말레이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 위원장직 사임을 발표한 지 3개월이 다 돼 가지만, 해당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라고 혀를 찼다.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해당 자리에 선임될) 마땅한 분들을 찾고 있다”라면서도 “다만 구체적인 후보군은 추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위원장 자리가 공석인 만큼 위원회 구성원들의 구성도 아직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다. 자리가 공석이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후보군조차 추려지지 않았다는 건, 공정하고 투명한 대표팀 시스템 구축에 관한 협회 의지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본지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실제로 축구협회는 지난해 7월 13일 정관 제7장 분과위원회 제52조(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개정했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기능은 ▲지도자의 선임과 해임, 재계약 관련 업무 ▲선수 선발 추천 ▲대회 참가 및 훈련 등 팀 운영에 대한 지원, 평가 및 제안 ▲TSG(Technical Study Group) 평가 관련 파견 ▲기타 이사회에서 부여한 관련 업무로 동일하다.

그러나 다른 핵심적인 부분이 변경됐다. 기존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남녀 국가대표와 15세(U-15) 이상 연령별 대표팀의 관리를 목적으로 설치한다’는 내용이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남녀 국가대표와 18세(U-18) 이상 연령별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 및 자문을 목적으로 설치한다’로 바뀌었다.

대한축구협회 정관 제7장 분과위원회 제52조(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개정 전과 후(아래). /한국스포츠경제 DB, KFA 정관 화면 캡처.
대한축구협회 정관 제7장 분과위원회 제52조(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개정 전과 후(아래). /한국스포츠경제 DB, KFA 정관 화면 캡처.

우선, 연령별 대표팀의 범위가 축소됐다. 협회는 2019년 2월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업무 범위를 기존 남녀 대표팀과 U-23 대표팀에서 U-15 대표팀 이상 모든 연령별 대표팀으로 확대했지만, 약 2년 5개월 만에 업무 범위를 다시 좁혔다. 아울러 당초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해당 대표팀의 감독 선임과 해임 권한을 갖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과 ‘자문’에 한해서만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 ‘조언’과 ‘자문’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권한에 불과하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권한 축소가 한국 축구의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바뀐 정관을 적용하면, 각급 대표팀 감독이 잘못된 운영과 판단을 하더라도 해임과 같은 직접적인 견제가 이뤄지기 어렵다. 감독 선임과 관련해서도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게 돼 팔이 안으로 굽는 잘못된 결과를 만들게 될 여지도 생겼다.

김판곤 전 위원장은 초대 위원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과거 ‘밀실 행정’, ‘파벌 인사’ 등 의혹에 시달렸던 대표팀 관련 인사 시스템을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개선하려 했던 인물로 평가 받는다. 김학범(62) 감독(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파울루 벤투(53) 감독(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 콜린 벨(61) 감독(AFC 여자 아시안컵 준우승) 등은 모두 김판곤 전 위원장이 철저한 검증을 거쳐 선임했던 지도자들이다.

김판곤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위원장직 사임 인사에서 “2018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부임 이후 실천하고자 했던 5가지 목표 중 하나는 감독 선임 프로세스 구축이었다”라며 “공정성, 투명성, 객관성의 원칙 아래 대표팀의 경기 철학에 맞는 감독을 임명하는 게 목표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표 선수의 성장 구조 확립도 하려 했다. 13세부터 23세까지 모든 연령대의 엘리트 선수는 물론, 늦게 성장하는 선수들까지 관리,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5가지 목표 중에는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있고, 주어진 역할의 한계로 인해 여전히 미흡한 것도 있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권한 축소로 김판곤 전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사임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축구 관계자들의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축구계 안팎에선 지난해 1월 정몽규(60) 축구협회장의 3선 취임 이후 새 집행부가 구성되면서 협회 내부 분위기도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축구협회 정관은 그 해 1월 27일과 7월 13일에 각각 개정됐다. 대표팀 감독과 선수단을 가장 잘 아는 김판곤 전 위원장이 도쿄올림픽 현장 파견 명단에서 예상치 못하게 배제된 것도 새 집행부가 꾸려진 이후다.

박종민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