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석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짙은 멜로 연기를 펼쳤다. 임민환 기자.

[한스경제 양지원] “야! 4885 너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영화 ‘추격자’ 속 명대사이자, 지금의 김윤석을 있게 해 준 대표작이다. 이처럼 대중에겐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유명세를 탄 김윤석이 늘 그런 캐릭터를 연기한 건 아니다. ‘거북이 달린다’ ‘완득이’로 친근감 있는 연기를 보여줬고, ‘쎄시봉’에서는 김희애와 아련한 멜로 호흡을 맞췄다. 그런 김윤석의 한층 더 깊어진 멜로를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타임슬립 멜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14일 개봉)다. 촉촉이 젖은 두 눈으로 한 손에는 풍선을 들고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김윤석의 모습이 상상이나 가는가. 

-의외로 멜로 주인공을 잘 맡는다.

“멜로 시나리오가 종종 들어오긴 한다. 사실 완성도 있는 멜로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중년 멜로는 불륜이 들어가지 않은 시나리오를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그런 와중에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영화화돼 너무 기쁘다.”

-영화의 어떤 점에 강하게 끌렸나.

“거두절미하고 영화의 완성도가 참 뛰어났다. 영화를 기승전결로 놓고 봤을 때 마지막까지 탄탄한 영화가 드물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기승전결이 딱 맞아떨어지는 구조였다. ‘완득이’에 이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두 번째라 접근하기 쉽기도 했다.”

-멜로는 스릴러, 액션과 결이 다른데 어떻게 연기하나.

“영화를 대결로 본다면 로맨스가 들어간 작품은 한 층 세밀해진 싸움이다. 상대와 감정을 서로 교감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상당히 어렵지만 매력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들을 단계에 거쳐 차곡차곡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파로 변질되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신파성이 없어 좋았다.”

-2인 1역인 변요한(과거 수현)의 연기는 어떻게 봤나.

“참 기특하다고나 할까. 연기를 접근하는 방식이 멋있다. 한예종 출신이라 그런지 다른 것 같다(웃음). 무엇보다 연기를 대하는 마인드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가 돋보인다. 어떻게 보면 나랑 비슷한 부분도 있다. 연기를 하기 전에 고민을 거듭하고, 현장에서 자신을 확 비워버린다. 오롯이 즉흥 연기를 보여주는 거다. 어떤 배우들은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연기하는데, 변요한은 자신을 즉흥적으로 내던진다. 돌발 상황을 스스로 맞닥뜨리는 용기와 같다. 그 용기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코피를 쏟고, 괴롭게 기침을 하는 신이 많았다.

“그런 장면들을 표현할 때 신경 써야 할 게 굉장히 많다. 특히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호스로 코피 흘리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한 번 실패해서 폭설 수준으로 코피를 쏟았다. 대사 후 코피를 흘러 NG가 많이 났다.”

-현재 수현의 딸로 등장한 박혜수와 호흡은 어땠나.

“같은 소속사다. 굳이 우리 딸 칭찬을 하자면, 고려대 국문과를 다니고 있고 머리가 굉장히 좋다(웃음). 영화에서는 아빠와 딸로 나와야 하니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집으로 자주 불렀다. 아내가 깎아준 밤과 과일을 먹으며 책상에서 마주보고 대본 연습을 했다. 실제로도 참 귀여운 친구다. 트라우마나 연기에 대한 고민들을 내게 털어놨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실제 딸이 있으니 부녀 연기가 편했겠다.

“너무 편했다. 사실 아들 설정보다 딸이 더 편하다. 실제로도 딸에게 자주 요리 해주는 편이라 어색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원래 식당을 해서 웬만한 음식은 잘 하는 편이다. 손에 물 묻히는 게 전혀 힘들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보고 자랐다. 보기에는 거칠어 보일지 몰라도 알고 보면 굉장히 섬세하다. 요리도 좋아하고, 아내 옷도 직접 골라준다. 가정적이다.”

-마초와는 거리가 먼 성격인가보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마초라고 생각하는데 대화를 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수다스럽고 따뜻한 면이 있다(웃음). 손위로 누나가 둘 있는 막내다. 우리 집에 다 여자밖에 없다. 심지어 강아지도 암컷이다.”

-후배들이 같이 연기하고 싶은 선배로 꼽힌다.

“고맙고, 기분 좋다. 사실 후배들도 좋은 작품을 만나야 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드라마나 작품에 대해 후배들과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딱딱한 자리 말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사석에서.”

-영화처럼 3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짧게 ‘파이팅!’이라고 외칠 것 같다. 괜히 미래에는 이렇게 된다고 말해주다 헛바람 들면 안 되지 않나. 거들먹거리면서 영화계 기웃거리다 안 되면 어떡하나. 그러면 농사지을 수 밖에 없지 않나.”

- ‘남쪽으로 간다’에 이어 두 번째 여성감독이다.

“홍지영 감독은 글을 참 잘 쓴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도 직접 각색한 작품인데 일단 거기서 합격이 됐다. 겉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감성적으로 보이지만, 냉철한 면모도 있다. 변요한과 내가 홍 감독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장을 지휘하는 힘이 있다.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은 없지만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과거로 돌아가도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면.

 “단 하나 바꾸고 싶지 않은 건 내 아내와 딸이다. 딸이 바뀌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알고 보면 팔불출에 딸바보다. 사춘기가 되면 대화단절도 된다고 하던데,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고 있다. 지방에 촬영을 가면 보름씩 집에 못 오니까 있을 때 더 가족과 함께 하려고 한다.”

사진=임민환 기자 limm@sporbiz.co.kr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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