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금융위원장 "손태승, 책임 물어야 한다는 당국 뜻 명확"
금융당국 압박 이후 조용병 용퇴·농협금융 친 정권 인사 낙점
"금융권 실세 발언, 외압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어"
금융당국이 사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연임이 확실하게 여겨졌던 인사는 스스로 용퇴를 선언하거나 관료 출신 인사로 교체됐으며, 아직 임기가 남은 수장에 대해서도 연일 '연임 불가론'을 언급하며 압박하고 있다. /한스경제 DB, 우리금융그룹 제공,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사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연임이 확실하게 여겨졌던 인사는 스스로 용퇴를 선언하거나 관료 출신 인사로 교체됐으며, 아직 임기가 남은 수장에 대해서도 연일 '연임 불가론'을 언급하며 압박하고 있다. /한스경제 DB, 우리금융그룹 제공,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은행권이 말 그대로 관치금융의 전성시대로 가고 있어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사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연임이 확실하게 여겨졌던 인사는 스스로 용퇴를 선언하거나 관료 출신 인사로 교체됐으며, 아직 임기가 남은 수장에 대해서도 연일 '연임 불가론'을 언급하며 압박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지배구조가 확립된 기업에 직접적으로 본인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며 우려했던 관치금융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사 CEO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관치금융'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사전지정운용제도 현장안착을 위한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에 직후, 용퇴를 결정한 조용병 회장에 대해 "조용병 회장이 3연임을 할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면서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CEO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는 "원론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의 수익성, 사회공헌도 측면에서 최고경영자(CEO) 임명 관련된 금융당국의 입장을 말했고, 금융위원의 한 명으로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의 용퇴를 언급하는 동시에 라임사태의 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행보에 다시 한 번 압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20일) 손 회장을 겨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손 회장의 라임펀드 환매 중단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중징계에 대해 "최고경영자(CEO)인 손 회장에 라임펀드 책임이 명확하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회장의 연임에 대해 "금융위는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라임펀드 사태를 단순 직원의 문제가 아닌 CEO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정했다"며 "손 회장에 책임이 있다고 감독당국이 명확하게 판정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9일, '제20차 정례회의'를 통해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 등 금융감독원 검사결과 발견된 위법 사항에 대해 업무일부정지 3개월 및 퇴직 임원(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문책경고 상당 등의 조치를 의결했다. 

손 회장은 앞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문책경고 중징계를 받았으나,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 연임에 성공했다. 이후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 나서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으며 연임 가능성을 높였다. 

업계 안팎에서는 손 회장과 우리금융이 앞선 DLF 사례와 같이 법리해석을 통해 라임펀드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손 회장이 연임하려면 DLF 사례와 같이 소송에 나서야 하는데 이에 앞서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금융위 논의를 거쳐 의사결정을 내린 게 정부 뜻”이라며 사실상 손 회장의 연임 불가를 공식화한 것이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은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이다”라는 발언과 함께 손 회장의 연임과 관련해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손 회장의 연임 행보에 제동을 건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상식적인 말"이라며 "당국은 판결로 의사결정을 한 것이며, 본인(손태승 회장)이 어떻게 할지는 본인이 잘 알아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손 회장의 연임 불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지배구조가 확립된 곳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본인 의지대로 끌고 가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금융으로선, 경영 연속성과 안정화 차원에서 손 회장의 연임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다만,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연임했다면 정상적인 수순이었는데, 용퇴를 결정하면서 분위기 자체가 관치금융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노조는 금융권에 불고 있는 관치금융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최근 금융당국의 최고 수장은 '현명한 판단', '공정, 투명한 CEO선임' 등을 운운하며, 우리금융 CEO 선임에 직접 개입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여왔다"며 "완전 민영화를 이룬 우리금융은 시장 자유주의 경제 원칙에 부합하는 과점주주 체제의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우리금융의 CEO 선임에 관치가 작용한다면, 이는 현 정부가 내세운 국정의 대원칙인 '법치'나 '시장자유주의 원칙'마저 깡그리 무시하는 것으로 결국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지난 16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손 회장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내년 1월께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관치금융이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 원장이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에서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금융지주사의 CEO 인사 역시 예상밖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임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조용병 회장은 갑작스럽게 세대교체를 이유로 용퇴를 결정했고, NH농협금융지주는 용퇴 의사가 없던 손병환 회장을 대신해 친정권 인사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으로 낙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조용병 회장이 공식적으로 용퇴를 결정했지만, 금융당국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농협금융 인사 역시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농협중앙회가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내정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금융권에서는 경영진 선임에 대해 도덕성을 강조한 이 원장의 발언 이후 채용·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법적리스크를 껴안았던 조용병 회장과 손태승 회장의 연임은 어렵다고 전망했으며, 업계 예상이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많아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지만, 금융권 실세가 공개적으로 사기업 CEO 인사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금융사 내부적으로도 외압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임을 할 수 있는데 (외압으로)하지 못하는 것과 경영능력을 입증하지 못해 못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면서 "금융당국이 대놓고 민간 금융사를 압박하고, CEO 인사가 흘러가는 것을 보면 '관치를 이 정도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밝혔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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