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 Mr . 마켓 <90회> 글·김지훈

새벽 5시. 창밖 하늘은 밝게 달아오른다.

수줍게 옅은 햇빛이 들어오면, 읽고 있던 책을 놓고, 하늘을 보게 된다. 무리 지어 피어나는 버섯 같은 구름들, 지빠귀 노랫소리, 거침없이 달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와 도로에 밀착되는 타이어 진동 …. 거인이 깨어나듯이, 도시가 꿈틀거린다.

어제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오늘이 또 시작된다. 갑자기 간절하게 시튼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 싶어졌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 생존전략.

마흔 늦은 나이에 책을 붙잡았을 때, 시튼 도서관에는 뉴욕대에서 봉사활동 나온, 아담한 체구의 여학생이 있었다.

미소가 일품이었는데, 이름이 루시였다.

그녀 때문에 루시라는 책 제목을 골라, 읽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고고학 에세이였는데, ‘missing link, rusy’였다.

나에게 용기가 있었다면, 그리고 기회가 있었다면, 권력이 있었다면 …. 루시에게 나를 소개했을 것이다.

첫 번째 백만 달러를 벌었을 때, 루시를 찾았다. 그녀는 패션 잡지 회사에서 일했는데, 뉴욕의 다른 젊은이들처럼 꽤 고단한 삶을, 즐겁게 살고 있었다.

“좋은 여자였나요?”

인공지능 루시가 두 템포 느린 타이밍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녀를 유혹했나요?”

인공지능의 질문은 놀랍도록 예리했다. 이 예리함이 맘에 든다.

루시는 잡지회사에서 받은 돈으로 대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 나는 파킨슨 교수의 소개로 대학원에서 실전 투자법과 파생 상품론을 가르쳤다. ‘지금 당장 성공하라.’ 식의 강의 내용이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내 손을 거친 에세이가 출판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자, 나와 엮이려는 학생들이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맘만 먹었다면, 루시를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었다. 그녀를 스타로 만들고, 그녀가 더 나은 직업과 캐리어를 갖도록 후원할 수 있었다. 내 여자로 만드는 건, 더 쉬웠을 것이다.

“이 여자인가요?”

AI 루시는 에어그램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동시에 띄웠다. 시튼 도서관 루시의 최근 이미지와 그녀가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영상이었다. 영상 하단에 적힌 시간은 고작 여섯 시간 이전이었다. 그녀는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 포터빌에서 생활하면서, 포터빌 국립공원에서 계약직 공무원을 일하며, 좀 더 나은 직장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포터빌 전력회사를 통해서, 그녀에게 일자리를 제안할 수 있어요.”

AI 루시는 내 표정만으로 내 생각을 읽어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녀를 돕지 않을 건가요?”

“왜 그녀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분석한 거지?”

“그녀를 원하잖아요.”

“분명, 옛날에는 그랬지. 기회도 있었고 ….”

지그시 눈 감고 멀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했다. 장담컨대, 나는 루시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숭배받고, 그녀가 나를 의지하도록 ….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여자에게 해왔던 일이었고, 그 시절에는 여자와의 관계 발전 능력이 ….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자부한다. 성공한 남자가 열정을 가진 젊은 여자를 유혹하는 건, 시시할 정도로 쉽다.

“ …. 궁핍하고 가난한 게 …. 타락은 아니야. 무능력도 아니고 …. 그냥 그런 세계가 있는 것뿐이고, 어떤 사람은 그런 세계에서 사는 게 편안하지.”

“설명해주세요.”

“설명? 사람 사는 건, 논리적인 게 아니야.”

“그렇다면 …. 변명이라도 해주세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리했다. AI 루시라면, 지우 말대로, 좋은 여자친구가 될 것도 같다.

“그녀가 쓴 리포트를 봤지. 열심히 했지만, 그뿐이었어. 재능도 없었고 …. 삶의 원칙도 보이지 않았지. 교체 가능한 …. 흔해 빠진 보충용 인생이더군. 그런 타입에게 기회를 주면 어떻게 될지 너무 뻔했어 ….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잘했어도 …. 그녀는 날 원망했을 거야.”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죠?”

“알 수 없지 …. 그냥 핑계일 수도 있겠지 ……. 루시 …. 직접 이름을 고른 건가?”

“네.”

“혹시 내 과거를 분석해서 …. 정한 이름인가?”

“네. 적절하지 않나요?”

내가 뚱한 표정을 짓자, AI 루시는 덧붙였다.

“적절하진 않아도, 논리적이지 않나요?”

 

한국스포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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