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 양의지(왼쪽)와 김현수. /연합뉴스
한국 야구 대표팀 양의지(왼쪽)와 김현수. /연합뉴스

[도쿄(일본)=한스경제 이정인 기자]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 대표팀의 주장을 맡은 김현수(35·LG 트윈스)는 한국 야구의 국제무대 도전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KBO리그 대표 교타자인 그는 역대 가장 많은 10번의 대회와 62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353(218타수 77안타), 4홈런, 48타점을 올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으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썼다. 2009년 WBC 준우승과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우승 영광을 누렸다. 2013년 WBC와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에선 좌절도 맛봤다. 국가대표로 환희와 오욕의 순간을 모두 경험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김현수(왼쪽)과 양현종(오른쪽). /연합뉴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김현수(왼쪽)과 양현종(오른쪽). /연합뉴스

한국 야구 역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김현수가 아쉽게 ‘라스트 댄스’를 마무리했다. 이강철(57‘라스트 댄스’KT 위즈)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2023 WBC 1라운드 B조 3위(2승 2패)에 그쳐 2라운드(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 2017년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맛봤다.

13일 중국과 최종전이 끝난 뒤 믹스트존(공동 취재구역)에서 만난 김현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선수들 모두 잘 준비했는데, 그만큼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해서 아쉽다. 선수들 다 잘해줬고, 감독님도 선수들에게 맞춰줬다"면서 "주장으로 부족함이 있었다. 제가 부족한 탓에 선수를 잘 못 이끌어서 좋은 성적을 못 냈다. 후배들은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 정들었던 태극마크와 작별을 고했다. "저는 이제 끝났다. 코리아 유니폼을 입는 건 마지막이다"라며 "이제 나이도 들고, 젊은 선수들이 잘할 거라 생각한다. 내려올 때가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주장으로 부담감을 느낀 탓인지 이번 대회에 부진했다. 3경기에서 타율 0.111(9타수 1안타)에 그쳤다. 체코전에서는 7회 무리한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장타를 내주기도 했다. 그는 "마음이 아프다. 놀러 왔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다"며 "성적이 안 나오면 욕먹는 게 맞다. 그래도 이렇게 되니까 마음이 아프고,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침체에 빠진 한국 야구는 이번 대회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이번 대표팀 선수들은 대회 시작 전부터 '위기의 한국 야구를 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떠안았다. 커다란 부담감에 짓눌린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떠나는 김현수는 후배들에게 “부담감을 떨쳐내고 즐기라”고 당부했다. "막내로 왔을 때, 어렸을 때는 중압감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선배님들과 경기한 게 많이 기억난다"면서 "좋은 선배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 정말 미안하다. 긴장을 풀어줄 분위기를 만들지 못해서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이어 "준비 과정부터 최선을 다했는데, 이기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고 즐기는 환경을 만드는 게 선수들에게 제일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도 긴장하고, 선수들도 긴장했다"면서 "긴장감 속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부분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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