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 박병호가 방망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KT 위즈 박병호가 방망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일본)=한스경제 이정인 기자] 한국 야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물 안 개구리’임을 여실히 깨달았다. 물론,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퇴보하는 한국 야구가 세계 야구와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야구계에선 다양한 국제경쟁력 강화 방안이 거론된다. 고교야구 알루미늄 배트 재도입도 그중 하나다. 알루미늄 배트 재도입은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부진할 때마다 거론되는 국제 경쟁력 강화 방안이다.

알루미늄 배트는 가볍고 반발력이 좋다. 배트 중심에 맞아야만 장타가 나오는 나무 방망이와 차원이 다르다. 고교 야구는 지난 2005년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금지하고 나무 방망이를 도입했다. 투수를 보호하고 국제적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알루미늄 배트를 쓰지만,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2004년 18세 이하 청소년 국제대회부터 나무 배트를 사용하도록 규정을 손질했고, 우리도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파워가 부족한 고등학생 때부터 나무 배트를 사용하면서 자기 스윙을 하기보다는 공을 맞히는 데만 급급해졌다. 타자가 나무 배트를 쓰면, 투수가 제구력이 떨어져도 빠른 공만으로도 타자를 제압할 수 있어서 기량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실제 나무 배트 도입 이후 ‘젊은 거포’의 씨가 말렸다. 지난해 KBO리그 홈런왕은 30대 중반의 박병호(37·KT 위즈)다. 홈런 상위 10위안에 든 국내 타자 중 20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일본 야구 전문 매체인 '풀카운트'는 '일본 숙적 한국은 왜 약해졌나?'라는 기사에서 “한국이 고교야구에서 나무 배트를 사용한 이후 거포는 사라지고 이기기 위한 잔기술만 늘었다. 투수들한테도 영향을 미쳤다. 좋은 투수도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알루미늄 배트 재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용택(44) KBS 해설위원은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고교생이 나무 방망이를 쓴다. 투수의 공이 빠르면, 제구가 잘 안 돼 스트라이크 존 안에만 던져도 타자를 압도한다. 알루미늄 배트를 쓰면 투수가 제구력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라고 짚었다.

투수 출신인 박찬호(50) KBS 해설위원 역시 "고교야구 방망이를 알루미늄 배트로 바꿔야 한다"며 "알루미늄 방망이는 비교적 장타가 많이 나온다. 투수가 조심하기 위해선 제구력이 좋아야 하므로, 더 신경을 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알루미늄 배트 도입이 국제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투수 출신인 이동현(40)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15일 본지와 통화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도입해도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루미늄 방망이와 나무 배트는 성능 차가 너무 크다. 여러 가지 복합적 문제가 생길 것이다”며 “알루미늄 배트를 재도입하면 타자들이 지나치게 강해질 것이다. 투수들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현장에선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만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면 아마추어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전체적인 야구 수준이 떨어질 것이다”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25년간 야탑고 감독을 역임한 김성용(53) SSG 단장도 알루미늄 배트 도입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알루미늄 배트와 나무 방망이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나무 배트는 단점도 있지만, 선수들이 프로 적응을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돕는 장점도 있다”며 “사실 아마추어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느냐 나무 방망이를 사용하느냐는 국제경쟁력과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밀하고 과학적인 훈련법을 만들고 적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폭넓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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