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시각·청각 모두 자극…마치 작품 속에 있는 듯
"현대미술과 게임의 흥미로운 접점 찾고,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게임 사유 기회 될 것"
하룬 파로키의 '평행 Ⅰ-Ⅳ'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성은숙 기자
하룬 파로키의 '평행 Ⅰ-Ⅳ'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성은숙 기자

[한스경제=성은숙 기자] 게임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예술작품처럼 전시해 보여줄 수 있을까? 게임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얘기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지난 12일 게임과 사회를 주제로 한 기획전 '게임사회'가 개최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방문했다.

'게임사회'는 비디오 게임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 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된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2010년 초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스미소니언미술관이 수집한 비디오 게임 소장품, 국내 게임 등을 포함한 9점의 게임과 함께 비디오 게임의 문법과 미학에 영향을 주고받은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 등 총 40여 점을 소개한다.

김희천의 '커터3(2023)'를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성은숙 기자
김희천의 '커터3(2023)'를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성은숙 기자

전시가 열린 지하1층에 들어서니 서울박스에 마련된 빈백에 기대어 김희천 작가의 대형 신작 '커터3(2023)'를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압도적인 크기의 스크린에 작가의 영상작품이 선보여지고 있었다. 

하룬 파로키, 시리어스 게임 I-IV, 2009-2010, 다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Harun Farocki GbR 소장, 시리어스 게임 I_망연자실한 왓슨, 영상스틸./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하룬 파로키, 시리어스 게임 I-IV, 2009-2010, 다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Harun Farocki GbR 소장, 시리어스 게임 I_망연자실한 왓슨, 영상스틸./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시각·청각 모두 자극…마치 작품 속에 있는 듯

'예술게임, 게임예술'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4전시실에서는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하룬 파로키의 '시리어스 게임 Ⅰ-Ⅳ'를 만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을 군인들의 생생한 묘사를 참고해 실제와 가깝게 구현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그 게임을 무표정한 얼굴로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군인들의 모습, 전쟁과 무관하게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려는 사람들, 갑작스런 총격전이 벌어지며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하는 모습 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병렬로 배치된 스크린들 앞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다양한 소리를 들으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직접 관람해보니 시각과 청각이 모두 자극돼 마치 작품 속에 있는 듯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 작품 감상에 소요되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데도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로렌스 렉, 노텔 (서울 에디션), 2023, 멀티미디어 설치, 작가 및 Sadie Coles HQ 런던 소장.이미지 로렌스 렉, 노텔, 작가 및 Sadie Coles HQ 소장./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로렌스 렉, 노텔 (서울 에디션), 2023, 멀티미디어 설치, 작가 및 Sadie Coles HQ 런던 소장.이미지 로렌스 렉, 노텔, 작가 및 Sadie Coles HQ 소장./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세계 너머의 세계'를 주제로 한 3전시실로 이동하는 통로에는 건축도면 같은 작품들이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호기심이 높아질 쯤 대형 스크린 앞에 서게 됐다. 로렌스 렉의 '노텔(서울에디션)(2023)'이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도시 내 특급 호텔에 대한 설명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앞에 설치된 텔레비전 4대 중 하나 앞에 자리잡고 앉아 게임 컨트롤러를 조작하니, 미래지향적인 초호화 특급 호텔의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자동화된 고급서비스를 구현한' 호텔에서는 플레이어인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마주칠 수 없었다. 호텔업 종사자들을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대체한 호텔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2021)'./성은숙 기자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2021)'./성은숙 기자

'정체성 게임'이라는 주제의 2전시실에서는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2021)'는 작품이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총을 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 시작 전 캐릭터를 고르고 총을 쏘는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는지 게임을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 작품(게임)의 메시지는 다음 방에서 나타났다. 그곳에는 방금 전 총을 쏘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는 CCTV 영상이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올바른 사람들을 조준하고 있습니까?", "총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빼앗을 뿐입니다", "잠시 본인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등의 메시지가 적힌 영상이 재생됐다. '올바르게 조준'해 '제대로 해를 가했다'고 생각했기에 충격이 적잖았다. 같은 전시실에 설치된 람 한의 VR 작품은 오는 15일부터 예약 가능해 관람할 수 없었다. 

◆ 장애인·비장애인 누구나 편하게 게임 가능한 전시

한편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비디오 게임들은 국립재활원의 연구개발기구인 보조기기 열린플랫폼이 기획·개발한 게임 접근성 보조기기 및 마이크로소프트사 엑스박스(Xbox)의 접근성 게임 컨트롤러를 지원받아 장애·비장애인 누구나 편하게 게임할 수 있도록 해 화제를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과 게임의 흥미로운 접점을 찾아보고,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게임을 사유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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