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교수(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찬규 교수(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한스경제/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 말은 사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 중 하나다. 수능이 쉽게 출제되어야 학생들이 암기 지옥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슨 배경에서 시작되었건 간에 킬러 문제를 없애는 것에 찬성한다. 킬러문제가 상위 0.1%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교육적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학부모 모두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된 수능 지옥에 갇혀 괴물로 성장해 가는 현실을 문제 삼아 왔지 않은가? 

일부에서는 물수능을 ‘실수 안 하기 수능’이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전과목 만점자가 1000명 나오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2023년 현재 우리나라 입시 지향점의 끝인 전국의 의대 입학 정원이 3058명이다. 한 두 문제 틀려도 의대에 갈 수 있다. 그리고 이전 불수능 시험에서도 실수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았을 것이다.

수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더 미래 지향적이고, 창의적인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한 평가 방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논술과 수시 종합전형은 미래형 우수 학생을 길러내는 좋은 방식이었지만 논술은 학교 현장에서 가르칠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수시 종합전형은 부조리의 온상으로 인식되어 사그라지고 있다. 더 나은 방식은 제도나 준비의 미비로 비난받고, 공정성 확보라는 틀에 갇혀 여전히 구닥다리 방식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를 입시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2023년 선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여전히 일회성 불수능으로 인생을 결판 짓고, 그 굴레를 평생 짊어지게 하는 후진적 서열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다 변해도 우리 교육만 변하지 않아

수능을 쉽게 내면 많은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다. 아이들은 암기식 반복 학습에서 벗어나 보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환경 생태 교육도 하고, 인공지능에 관련된 과목도 가르쳐야 하는데 수능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생이나 부모들은 관심이 없다. 인공지능 과목도 수능 오지선다형으로 치를 것인가?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학부모들은 깜짝 놀란다. 자기들이 다녔던 시절과 거의 변함없는 내용과 방식으로 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할 시간도 없이 쳇바퀴에 올라타야 한다. 세상이 다 변했는데 우리나라 교육만 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불수능이라는 지하터널에서 벗어나야 시험 기능이 대부분인 학교 교육은 정상화될 것이며, 교권이 바르게 작동할 수 있다. 부모들은 사교육이라는 암초로부터 중년을 지킬 수 있으며, 사회의 서열은 무뎌질 수 있다. 수능은 점수가 있어서 수험생을 일렬로 세울 수 있지만 논술이나 수시 종합평가는 일렬로 세우기가 어렵다.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야 한다는 봉건적 질서가 무너져야 입학 서열이 완화될 것이고 수도권 집중화도 약화될 수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전국에 흩어져 지역이 살아나야 국가의 미래가 열린다. 

이와 함께 지방 국립대학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1년 예산이 서울대에 육박할 정도로 지방 국립대에 지원된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수도권 대학들을 능가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현재 학생들 입학 성적은 서열화되어 있지만 교수들의 역량은 어느 정도 전국이 평준화되어 있다. 당분간 수도권 대학 수준의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든지 지방 대학이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의미이다. 마음 놓고 어디서나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개방적인 사회가 되어야 출산율도 늘어난다. 

◆‘질문 교육’ 없는 현실...‘국가논술’과 ‘수시종합전형’ 제안 

물수능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논술과 표준화된 수시종합전형을 제안해 본다. 그야말로 학생의 개성을 살려가는 ‘맞춤형 교육’인 수시종합전형의 취지를 살리고 부조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당분간 표준화된 모형을 만들자는 것이다. 대학이 출제하면 또 본고사처럼 출제할 수도 있으니 국가 주도로 논술을 치르고 답지를 스캔한 다음 지원 대학에 보내 채점하게 한다면 논술 채점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심지어 세계 최고의 AI 엔지니어들조차 기술이 주도하는 AI(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주요한 능력 중 하나가 ‘정당한 비판 능력’이며, 이것을 갖지 못하면 가짜 뉴스, 가짜 정보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읽고 쓰는 능력은 인간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고, AI가 이것을 일부 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은 나의 생각, 나의 글이 아니므로 AI의 언어는 결국 보조적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까지 전적으로 AI에게 맡긴다면 주체적이고 자존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13세가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 이유가 비판적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미국 유명 여배우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미국 상류 사회에서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 ‘자기 생각’을 기르는 것이라는 점을 이제 우리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심지어 어떤 입시전문가는 너의 생각을 없애고 오로지 출제자의 의도만 생각해라고 가르친다. 현실만 고려한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엉뚱한 질문은 용납되지 않는 학교’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선진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한다는 ‘질문 교육’이 우리에겐 없다. 질문을 하지 않는 학생이 졸업 후 글로벌 무대에서 어떻게 그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할 수 있겠는가? 또 창의성 개발의 관점에서 보아도 중고등학교 시절의 두뇌활동이 가장 유연한 시기이고, 이 시기의 창의적 경험이 성인 시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런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생각하고, 글쓰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으므로 하루빨리 교육에서 이것을 복원하려면 물수능과 수시종합평가, 글쓰기 평가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르게 촉발된 킬러 문제 사태가 엎질러진 물이 아니라 많은 문제 해결의 물꼬가 될 수 있다. 제발 이 문제만이라도 진보와 보수랍시고 나뉘어 물어뜯지 말고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핀란드 교육이니 독일식 교육이니’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로만 떠들지 말고 당장 올해 시행은 어렵더라도 국민들 모두가 우리 아이를 유학 보내야 하는 고민을 하지 않도록 ‘제발’ 논의다운 논의를 시작해 달라.

이찬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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