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이념 시비는 애초부터 논쟁거리가 안 된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이 남긴 족적은 명확하다. 장군은 독립군 첫 승리 봉오동 전투와 최대 승리 청산리 전투를 이끌었다. 대한민국을 부정한 일도 없다. 집권여당이 시비하는 공산주의자도, 빨치산도 아니다. 비록 배우지 못했지만 동료 포수들과 독립군을 조직해 치열하게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돼 중앙아시아에서 생을 마쳤다. 아내는 고문에 굴하지 않고 옥중에서 숨졌다. 두 아들도 홍 장군을 따라 전장을 누비다 이른 나이에 전사했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지금 벌어지는 이념논쟁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홍 장군을 비롯해 자신을 돌보지 않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있다. 홍범도(1863~1943) 장군도, 안중근(1879~1910) 의사도, 윤봉길(1908~1932) 의사도 가족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했다. 한데 광복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우리는 그들을 모시지 못했다. 윤 의사 유해는 1946년 6월에야 돌아왔다. 일본 가나자와(金澤)에서 순국한지 14년만이었다. 안 의사 유해는 아직껏 소재조차 모른다. 서울효창공원 3의사 옆 가묘는 안 의사를 위한 것이다. 향후 유해를 찾으면 안장할 예정지이지만 기약할 수 없다.

홍 장군 유해는 2021년 8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영면한지 78년 만이다. 그해 봉환식 캐치 프레이즈는 ‘장군의 귀환, 이제야 모시러 왔습니다’였다. 국민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유해 봉환을 지켜봤다. 카자흐스탄 정부와 고려인 동포들은 아쉬움 속에 장군을 떠나보냈다. 압드칼르 크질오르다 주지사는 “영웅 홍범도 장군이 고향 땅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또 미래 세대가 그를 기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홍 장군 묘역을 관리했던 김 레프 니콜라예비치도 “홍 장군 유해가 한국에 간다는 건 고려인들 마음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별의 슬픔을 이겨낸다”고 했다.

뒤늦게나마 홍 장군 유해를 모실 수 있었던 건 고려인들 덕분이다. 그들은 홍범도 장군의 말동무가 되어 마지막 길을 지켰다. 또 묘역을 조성하고 매년 제사지냈다. 그들에게 홍 장군은 정신적 지주였다. KTV 유해 봉환 기록영상에는 홍 장군 유해를 눈물로 배웅하는 고려인들이 보인다. 고려인 사회는 생전에 홍범도 장군에게 ‘고려극장(현 문화극장)’ 수위 자리를 마련해줬다. 또 고려극장은 홍 장군 일대기를 담은 ‘의병들’이란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홍 장군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려인 동포들과 ‘의병들’을 보며 일제와 싸운 무용담을 회고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우리사회는 지금 홍범도 장군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이념논쟁을 안다면 홍범도 장군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하에서도 편히 쉬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대로라면 미래 세대가 홍 장군을 흠모하고 기념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고려인 동포에게 미안하다. 고려인들에게 홍 장군은 자랑이자 우상이었다. 그런데 조국은 철 지난 이념 잣대로 홍범도 장군을 부관참시하고 있다. 홍 장군과 자신들을 동일시했던 고려인 사회는 정체성이 부정되는 현실 앞에서 참담한 심정이다. 차라리 홍 장군 유해를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보내라는 목소리로 들끓고 있다.

집권여당이 제기한 이념논쟁은 터무니없다. 장군은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당시 소련 공산당과 2023년 북한 공산당은 천양지차다. 또 1920년대 레닌 공산주의와 1940~50년대 스탈린 공산주의도 다르다. 당시는 미국과 러시아가 한편이 되어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싸웠다. 소비에트연맹은 식민지 약소국 해방을 적극 지원했기에 독립 운동가들은 우호적이었다. 시대상황을 외면한 채 소련 공산당 입당을 시비하는 건 몰상식하다. 대규모 독립군 사상자를 낸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근거도 없다. 기록은 오히려 “이 소식을 들은 홍 장군은 통곡했다”고 적고 있다.

빨치산을 공산군 잔당(빨치산)과 동일시하는 것도 황당하다. ‘빨치산’ 어원 파르티잔(partisan)은 비정규군으로서 독립군, 의병, 저항군을 뜻한다. 홍 장군은 입국 카드에 직업: ‘의병’, 입국 목적: ‘고려 독립’이라고 적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독립군을 공산군 빨치산으로 몰고 가는 건 장군과 독립군에 대한 모독이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독립투사 홍범도’도 맞지만 ‘공산당원 홍범도’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육군사관학교와 국군이 ‘공산당원 홍범도’를 기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1920년대 공산주의를 2023년 북한 공산당과 등치시킨 매카시즘 선동이 아닐 수 없다.

억지 논리를 펴다보니 집권여당 논리는 좀스럽다. 내뱉은 말을 주워 담기도 그렇고, 중단하자니 쑥스럽다. 지금이라도 홍범도 장군에 대한 모욕적인 이념논쟁은 멈춰야 한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엉터리 역사논쟁을 고집한다면 국민의힘은 역사의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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