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저출산·가계부채·한계기업 문제 해결 없인 ‘잃어버린 30년’ 따라갈 수도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이웃한 일본의 경우처럼 우리 경제도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체질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핵심 이슈들이 선결되지 않는다면 반등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일본의 연 경제성장률을 2.0%로 수정 전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1.4% 수준으로, 25년 만에 일본에 성장률이 추월당한 것이다.

‘잃어버린 30년’이란 수식어가 뒤따르는 일본의 저성장 국면은 우리나라와 차이를 보인다. 1991년을 기점으로 일본은 버블경제가 붕괴되며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반면,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단계적으로 서서히 저성장 단계로 진입했다.

양국의 대표적인 유사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인구 고령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는 30년 전 일본과 유사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15년 이후 비생산가능인구를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총부양률이 높아지며 우리 사회의 부양부담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0.36배이던 총부양률은 2020년 0.39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는 1990년 일본 총무성 통계의 0.44배와 유사한 구조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부양부담 증가로 인한 소비 침체를 야기한다. ‘아베노믹스’의 성과로 여성과 은퇴자의 경제활동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소비침체가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21년 0.81명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임을 감안하면, 고령화 속도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에 대한 우려는 훨씬 크다.

민간부채 중 가계부채 수준이 높다는 점 역시 과거 일본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우려가 크다고도 볼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임계수준을 GDP 대비 80% 수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린 이미 이를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다. 가령 지난 1995년 일본의 가계부채는 정점이었다고 회자되는데, GDP의 70.1% 수준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22년 이미 104.5%이다. 소득기준이 아니라 자산대비 가계부채 수준 역시 버블경제 당시 일본이 최대 13.2% 수준이었는데, 우리는 2022년 17.2%로 더 높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독일 등의 주요 선진국들은 그동안 금융위기 등의 상황에 따라 민간부채의 조정, 즉 디레버리징 과정을 거쳤는데, 우리나라는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과거 일본은 제조업 비중이 GDP의 30%를 초과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우리나라 역시 주요국들과 비교해 제조업 비중이 높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5.5%로 중국(27.5%)에 이어 세계 2위이다.

이런 산업 구조는 경제 성숙기에 진입한 이후 인건비 상승, 자본투입 대비 생산능력 저하 등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다. 이를 보완할 내수산업, 가령 서비스업 등의 기반이 취약하기에 성장 모멘텀이 크게 약화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닮은 점이 많은 양국의 차이도 분명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ICT 산업 역량이 일본과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첨단 산업은 전체 수출의 35.7%를 차지하며 이는 일본의 2배 수준에 달한다. 이처럼 첨단산업은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이면서 디지털 경쟁력도 높다.

부동산 리스크 역시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선 과거 일본의 버블시기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이 당시 수준처럼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소득대비 주택가격으로 봤을 때 일본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령 서울의 30평 아파트 가격은 1인당 소득의 약 30배 수준인데, 일본의 버블시기엔 약 60배까지 치솟았던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전세제도 역시 제도적 측면에서 차이점을 만든다. 전세제도는 실수요 측면, 투기수요 측면, 정부의 주택정책 측면에서 주택가격 하락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전세제도는 부채 수준을 숨기고 역전세난 등의 새로운 리스크를 만든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상존한다.

과거 일본 정부는 부동산 버블에 대해 사후적 금융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전적으로 규제를 마련하고 시행하는 까닭이다. 2002년 LTV를 도입하고 이후 DTI, DSR 등의 제도를 도입해 주택관련 대출에 대한 규제를 선제적으로 시행하는 걸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30년 전 일본이 겪은 부동산 가격 급락과 같은 사태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인위적인 부동산 부양정책이 시장 가격을 왜곡하고 리스크를 키울 우려는 여전히 높다.

일본의 경우 버블경제 붕괴 이후 1990년대 들어 부실채권이 급증했지만 정부와 은행의 방침은 기업의 경영개선을 기다리며 금융지원을 지속하는 양태를 보였다. 이른바 ‘좀비기업’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부실채권을 보유한 은행 파산도 늘어났으며, 신용경색으로 소비와 투자가 함께 위축되는 상황을 맞았다. 2000년대 들어서야 부실채권 상각, 브릿지뱅크 설립 등의 금융재생프로그램을 공표했지만, 실기한 조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설치해 이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해 왔다. 이후 2002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상황에서도 부실채권을 신속하게 매각했다. 외환위기 당시 캠코가 인수한 규모는 111조원 가량이었는데, 카드대란 역시 16조원, 금융위기 당시에도 10조 2000억원 규모를 인수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 때도 27조 2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부실자산 매각 및 은행 구조조정으로 대응해 시스템 리스크가 저축은행에 국한되고, 타 금융부문으로 전이되는 걸 막았다.

IBK경제연구소 장우애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고령화·과잉 부채·제조업 중심 등, 과거 일본과 닮은 부분이 많아 최근의 저성장이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30년’의 재현일지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며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일본과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신성장 동력 모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가계부채 및 부동산 가격 안정화, 혁신기업에 투자가 집중되는 자원의 효율적 재분배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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