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코로나 이전 돌아가긴 어려워...수출 비중 높은 한국 대비 필요
부산 북항에 야적된 컨테이너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부산 북항에 야적된 컨테이너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글로벌 공급망으로 돌아갈 수 없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수장이 지난 2022년 5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언한 것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기반을 가진 우리나라는 이런 변화에 민감하다. 예상보다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금융시장도 내년 최대 변수 중 하나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이슈를 꼽는다.

글로벌 공급망 패러다임 재편의 시발은 다름 아닌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경쟁에서부터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분업 기조에 따라 선진국은 내수호황,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누렸다.

그러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에 도전장을 낸 것은 중국이다.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강력한 경쟁 상대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 미국은 기술이전 강요, 지적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 무역관행을 꼬투리 잡아 중국산 제품에 대한 징벌적 관세를 부여했다. 이게 2018년의 일이고 이후 양국의 갈등은 본격화한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통신, 배터리 등 국가 핵심 전략기술에 대해 중국과 디커플링을 본격화한다. 아울러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동맹국들과 기술적 연대로 공급망 재편을 추진한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송재국 차장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대(對)중 수입은 2018년 5395억달러에서 2020년 4354억달러로 급감한다. 핵심 광물의 대중 수입 역시 6억 5900만달러에서 3억 3800만달러로 반토막 가까이 줄어든다. 이는 미국의 대중 평균 수입관세율이 2017년 3% 수준에서 2020년 20%까지 치솟은 탓이다.

2019년말 첫 발생 후 2020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추세를 더 촉진했다. 따라서 주요 산업별 글로벌 공급망은 더 이상 ‘글로벌화' 중심이라기보다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 ‘지역화' 등의 기조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생산공정 고도화나 기술혁신 등으로 인한 비용효율화 관점에서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기존의 신흥국 생산지에서 인건비가 상승한 데 반해,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인건비 절감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선진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소비와 제조 사이 근접성 이점을 위해 리쇼어링 혹은 니어쇼어링 추세가 강해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 제조업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고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당연히 지금과 같은 공급망 재편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 철강, 자동차부품, 석유화학 등은 모두 중간재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컴퓨터, 선박, 자동차를 제외한 대부분 수출품목의 중간재 비중은 50% 이상이다.

우리 핵심 수출상품인 반도체의 상황만 해도 미중 대립에서 비롯된 공급망 재편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은 한국, 대만, 일본 등 ‘칩4 동맹'을 기반으로 동맹국과의 공급망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설계기술 및 장비, 한국과 대만의 생산시설, 일본의 소재를 연계한 반도체 공급망이다. 주로 첨단 반도체 중심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범용 기술에 기반을 둔 반도체 생산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범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확대 전략을 구가하고 있다.

한편 지난 10월 세계은행(WB)이 발간한 보고서처럼 미국의 공급망은 여전히 중국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으며, 중국과 디커플링을 달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양국 갈등이 본격화하며 미국의 대중 수입이 줄었다곤 하지만, 중국산을 대체해 베트남이나 멕시코 등의 국가로부터 수입이 증가했다. 그런데 이런 국가들은 중국과 밀접한 무역관계를 형성하고 있기에, 실질적으로 중국 공급망을 우회해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최근엔 미중 무역총액이 2022년 기준 6906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바 있다. 대중 수입액도 5368억달러로 2021년에 비해 6.3% 증가했다.

그렇다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탈(脫)글로벌화' 패러다임은 한동안 지속될 기세다. 내년 경제나 산업, 금융 전망에서 주요 변수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이슈가 거론되는 이유다.

문제는 우리 산업과 경제가 이런 현실 속에서 자생력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내외 부침을 그대로 견뎌야하는 형국인데, 기업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봐도 우려스런 현실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11월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전 세계 34개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기업 부채 비율이 우리나라는 홍콩(267.9%), 중국(166.9%)에 이어 126.1%로 3위를 차지했다.

2분기가 120.9%였으니 3개월 만에 5.2%p가 올라간 것이다. 분기 사이 기업 부채 비율 증가 폭은 말레이시아(58.3%p)에 이어 2위 수준이다.

최근 1년 사이 기업 부채 비율이 올라간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록해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케냐, 남아공 등 9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은 -2.2%, 일본은 -2.5%, 영국 -3.6%, 유로존 -8%를 기록했다. 그에 반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13.4%, 중국이 8.6%, 우리나라는 5.7% 증가했다.

양적완화를 점차 줄여가는 테이퍼링 등 전 세계적으로 긴축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나라에선 기업들이 부채 비율을 줄여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우려스러운 점은 경기침체와 고금리 환경의 영향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증거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부채 증가 속도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11월 16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766조 3856억원으로, 10월 말에 비해 2조 696억원이 증가했다. 기업 대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의 기업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기업대출자의 1개월 이상 연체 원리금 기준 연체 대출채권 잔액이 4조 7000억원으로, 지난 2019년 3분기 5조 1000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연체율 역시 2021년 1분기 이후 0.38%로 최고 수준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4년 국내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131개 응답 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49.7%가 아직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5.3%는 투자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투자를 미루는 기업이 많은 것이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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