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700만 이상의 관객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그늘이지만 국내 프로스포츠의 태동기
스포츠가 정치 도구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박종민 스포츠부 팀장
박종민 스포츠부 팀장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한반도 역사의 줄기를 바꾼 3대 회군으로 고려 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과 1979년 10·26사건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육군본부행, 같은 해 12·12 사태 때 정병주 특정사령관의 9공수여단 유턴이 꼽힌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12·12 사태 때 신군부와 맞서던 아군의 9공수여단이 유턴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큰 아쉬움이 있다.

신군부의 12·12 군사 반란을 각색한 영화 ‘서울의 봄’에도 그 장면이 나온다. 700만이 넘는 관객들은 픽션이 가미된 영화에서만큼은 9공수여단이 유턴하지 않길 바라는 눈치였다.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는 국민의 공분을 사고 민주화 흐름에도 역행한 어두운 역사로 남아있지만, 오늘날 국민을 환호하게 하고 있는 주요 프로스포츠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시작을 알렸다.

신군부 하나회의 핵심인 육사 11기 동기생 전두환과 노태우는 쿠데타 이후 1980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해온 일본 우익의 거물 세지마 류조를 만나 조언을 받았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3S(SportsㆍSexㆍScreen) 정책’이다. 국민이 스포츠와 성(性), 영화를 소비하면서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군사 독재로 인한 민심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이른바 스포츠의 정치 도구화였다.

정장과 넥타이 차림의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 MBC 청룡(현 LG 트윈스)과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운동에 일가견이 있는 전 전 대통령은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히 꽂았다고 한다. 이듬해인 1983년 5월 8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첫 경기 시축자도 전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같은 해 씨름의 프로화에도 앞장섰다. 아울러 프로농구의 모태가 된 농구대잔치가 처음 열린 것도 그때였다.

전 전 대통령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스포츠 스타가 국제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면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는 관례도 5공화국 때 처음 생겼다.

국내 주요 프로스포츠의 출범 취지는 순수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40년 넘게 프로스포츠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시초가 됐다는 의미는 있다.

물론 더 이상 스포츠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헌장 50조 3항은 ‘올림픽 관련 시설과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지역 안에서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역시 월드컵은 물론 모든 축구 경기에서 정치적, 종교적인 메시지 또는 개인적인 슬로건이나 성명서 등을 보여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의 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을 빠져나와 현대사의 암울한 순간과 함께 그 시절 태동한 프로스포츠들의 다가올 봄도 어렴풋이 떠올려 봤다. 선수들의 땀방울이 근간을 이루는 스포츠는 역시 스포츠 그 자체일 때 가장 아름답다.

박종민 스포츠부 팀장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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