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재환(왼쪽)과 SSG 한유섬. /두산, SSG 제공
두산 김재환(왼쪽)과 SSG 한유섬. /두산, SSG 제공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프로야구는 2024시즌 대변혁을 맞는다.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ABS)이 도입된다. 투수와 타자의 준비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락은 이르면 2024시즌 후반기 정식 도입된다. 공격적인 타격과 주루를 유도하고자 수비 시프트 제한과 베이스 크기 확대도 전반기부터 시행된다.

이중 시프트 제한은 타자들의 성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시프트는 철저히 당겨치는 좌타자 또는 우타자를 봉쇄하고자 아예 한 쪽을 비워두고 내야수를 1, 2루 사이 또는 3루와 유격수 사이에 집중 배치하는 전술이다. 타자 봉쇄 확률을 높이는 전략으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인기를 끌었다. 잘 맞은 땅볼 타구들이 수비 시프트에 잡히자 빅리그 타자들은 한 방을 노리는 홈런 스윙에 전념했다. 이에 시프트 탓에 야구의 역동성과 박진감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MLB 사무국은 지난해 시프트를 제한했다. 새 규정에 따라 수비팀은 포수와 투수를 제외하고 내야에 최소 4명의 야수를 둬야 하며, 2루를 기준으로 양쪽에 2명씩 서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KBO리그는 MLB의 세부 시행 규칙을 그대로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KBO리그에서도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스타일의 타자들을 상대로 1-2간 또는 3-유간을 아예 비우는 수비 시프트를 펼쳐 상대 타자를 압박하는 전략을 볼 수 없게 된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유형의 타자들에게 시프트 제한은 호재다. 특히 좌타자들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당겨치는 좌타자가 많은 KBO리그 특성상 2루수를 우익수 앞 외야까지 후진 배치하는 ‘2익수(2루수+우익수)’나, 1~2루 사이에만 내야수 3명을 두는 전술 등 왼손 타자를 겨냥한 극단적인 시프트가 많았다. 잘 맞은 타구를 생산하고도 좌절했던 좌타자들은 올 시즌 시프트 제한으로 성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실제 2023시즌 MLB 좌타자들의 타율은 0.297로 2022시즌(0.287)보다 1푼이나 올랐다. MLB 기록 전문 사이트 베이스볼레퍼런스에 따르면, 좌타자의 당겨치는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도 2022년 0.258에서 2023년 0.288로 대폭 상승했다.

선수 시절 좌타 거포로 활약한 박정권(43)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15일 본지와 통화에서 “왼손 타자들에겐 수비 시프트가 분명 부담이 된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압박감이 더 심해진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반대쪽으로 밀어 치려다 타격 밸런스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면서 “수비 시프트가 제한되면 타자들은 확실히 심리적으로 편해질 것이다. 타구 스피드가 빠른 타자들은 성적이 오를 수 있다”고 짚었다.

지난해 극심한 부진을 겪은 베테랑 왼손 거포 김재환(35ㆍ두산 베어스), 오재일(38ㆍ삼성 라이온즈), 한유섬(35ㆍSSG 랜더스)이 시프트 제한을 등에 업고 반등할지 관심을 끈다.

2021시즌 종료 후 4년 총액 115억 원 계약으로 두산에 잔류한 김재환은 지난해 타율 0.248 24홈런을 기록하더니 올해는 타율 0.220 15홈런으로 고개를 숙였다. 장타율도 0.331에 불과했다. 주전으로 도약한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장타율이었다.

삼성 오재일. /연합뉴스
삼성 오재일. /연합뉴스

오재일도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106경기에 나서 타율 0.203 11홈런 54타점에 그쳤다. 왼쪽 햄스트링 손상 등 잔부상에 시달리며 규정 타석을 소화하지 못했다.‘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돼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가 찾아왔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유섬은 타율 0.273 7홈런 55타점에 머물렀다. 전반기 타율 0.185, 홈런 2개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1군과 2군을 오갔다. 7월 말엔 부진을 이유로 주장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장타율은 0.393으로 4년 만에 3할대로 떨어졌다.

이들은 당겨치기에 능한 좌타자들이다. 김재환의 지난 시즌 당겨치기 비율은 45.3%였고, 오재일은 47.8%, 한유섬 43.3%를 기록했다. 자연스럽게 상대 팀들은 이들에게 우편향 시프트를 즐겨 사용했다. 안타성 타구가 땅볼로 둔갑하는 등 시프트로 인해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 김재환은 "수비 시프트도 있고, 그 속에서 공도 (멀리) 안 나가다 보니까 변화하려고 했던 게 마이너스가 됐다. 밀어 치려고 시도했고, 그러다 보니 밸런스가 무너지고 장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수비 스프트와 힘겹게 싸웠던 셋은 이제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설 전망이다. 예년 같았으면 땅볼이나 직선타가 될 타구가 안타가 될 수 있다. 올 시즌 반등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권 위원은 “김재환, 오재일, 한유섬 등 몇몇 좌타자들이 지난 시즌 시프트로 인해 손해를 봤는데 올 시즌엔 타석에 들어섰을 때 부담감 덜하지 않을까 싶다. 심리적인 게 전부는 아니지만 반등하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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