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한스경제 송진현]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섬유관련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씨(75)는 2021년 3월 평소 거래하던 은행에서 홍콩 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 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

당시만 하더라라도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초저금리시대여서 은행예금을 해봐야 1~2%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상황이다. 반면 A씨가 가입한 H지수 기반 ELS 상품은 만기시 원금과 함께 10%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H지수 연계 ELS 상품은 가입조건에 따라 금리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A씨가 가입 당시 1만1000포인트 안팎이었던 홍콩 H지수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최근 50% 선인 5400선으로 폭락해 있다. 중국 경기가 악화되면서 중국 대표기업 50개의 주가지수로 구성된 H지수도 3년만에 상상하지 못한 수준으로까지 수직 낙하한 것이다. 녹인(Knock in)형이냐, 비녹인형이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H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3년 만기 시 대부분 하락한 만큼의 손실을 보게된 상황이다. H지수 ELS 상품은 보통 가입 시 대비 지수가 70% 정도를 지켜야 수익을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결국 A씨는 투자원금 1억원 중 만기 시 5000여만원을 날릴 처지에 놓여있다.

그는 지난달초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 지점을 찾아가 H지수 ELS 상품 판매과정에서 원금 보장이 안된다는 점을 고지했는지 여부를 살펴봤다. 혹시나 불완전 판매가 이뤄진 것은 아닌지 점검한 것이다.

그런데 은행 관계자는 판매 당시의 녹음 파일을 틀어주면서 원금보장이 안된다는 점에 A씨가 동의했다고 얘기했다.

A씨는 “다른 투자상품에선 10%의 이익을 보고 있다”며 자신의 H지수 ELS 손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가지수 혹은 개별종목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상품은 지수 혹은 주가와 연동, 일정한 조건을 걸어두고 약속한 시점에 조건을 충족하면 수익을 얻는 상품이다. 녹인형과 비녹인형으로 나누어지며 녹인형에서 '녹인'은 손실이 확정되는 지수 수준을 말한다. 녹인구간은 보통 상품 가입 시 대비 50%  낮은 선에 설정돼 있었다. 반면 비녹인 상품은  녹인 구간을 터치하더라도 주가가 반등해 특정 구간에 도달하면 수익을 얻는 구조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H지수 ELS 상품은 녹인형이 주류였다. 

연초부터 H지수 연계 ELS 상품이 은행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지난 2021년 이후 16조원 상당의 이 상품을 판매했다,.

1월부터 이 상품의 3년 만기가 속속 돌아오면서 반토막 손실이 현실화되고 있다. H지수가 수익구간을 크게 벗어나 하락하면서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특히 증권회사가 아닌 은행을 통해 이 상품에 투자한 고객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선 최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은행이 손실을 보상하라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민원을 접수한 금융감독원은 최근 H지수 ELS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을 상대로 현장 점검을 하며 불완전 판매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은행의 불완전 판매를 확인했다며 선제적인 손실 보상을 압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기본적으로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투자의 자기 책임원칙은 민법상 과실책임의 원칙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고의와 과실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 민법의 과실책임 원칙이다.

이를 H지수 ELS 상품에 대입해 보자. 위험도가 따르는 파생상품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치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 상품은 원금보장이 되는지, 홍콩H지수는 향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상당한 손실을 보더라도 자신의 경제생활에 타격이 없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가입해야 했다.

사전에 점검을 철저히 하지 않고 이제와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자 은행에게 손실을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원리에 맞지않는다.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은행들이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판매한 키코상품이 H지수 상품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키코(KIKO)는 '녹인'(Knock in)과 '녹아웃'(Knock out)의 앞부분을 본떠 만든 통화옵션 상품이다. 환율의 일정폭을 정해놓은 뒤 그 폭에서만 움직일 경우 기업이 미리 약정한 환율로 은행에서 외화를 거래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을 보는 구조였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환율폭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이 환율 위험을 헷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여기서 '녹인'은 환율 범위의 최저치를, '녹아웃'은 최대치를 이탈한 것을 의미했다.

기업들이 키코상품에 가입한 2005~2007년에 달러 환율은 1000원 안팎이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환율이 키코의 설정범위를 크게 벗어난 1500원대로 폭등하면서 해당 상품에 가입했던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게되었다.

이에 피해를 입은 개별 기업들은 해당상품 계약의 원천 무효 등을 주장하며 소송에 나섰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 2013년 판결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과 금융상품 거래를 하는 고객은 그 거래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이익과 부담하게 될 위험 등을 스스로 판단하며 궁극적으로 자기의 책임으로, 그 거래를 할 것인지 여부 및 거래의 내용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자기 책임의 원칙을 명확히 했다. 이어 ‘이러한 자기 책임의 원칙은 장외 파생상품 거래와 같이 복잡하고 위험성이 높은 거래라고 하여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키코상품 계약은 적법한 것이며 설명의무를 위반했을 경우에만 피해자 손을 들어주었다.

이러한 대법원 판례에 비춰보더라로 H지수 ELS 상품의 손실에 대해 무턱대고 은행에 손실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옳지않다. 법적으로 은행은 고객들의 손실을 모두 보전해주는 기관이 아닌 것이다. 

송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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