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특정국 중심 국제 질서 흔들...개발원조·금융협력 등, 입지 넓힐 기회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국제 질서의 변화는 언제나 계속되는 것이지만, 최근의 상태는 상당히 불안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와 안보라는 두 축을 중시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대외정책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새로운 조력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이에 따라 최근 부각되고 있는 지역은 그동안 도외시되던 글로벌 사우스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경제적 대립이나, 2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후티 반군 및 이란의 중동 해로 장악 등은 불안정한 국제 질서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 마디로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 헤게모니가 깨지는 와중이다.

이를 대체할 국가로 거론되는 것은 아무래도 중국이다. 그러나 국제 질서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부정적이다. 비록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고, 다양한 산업 공급망에서 필수 연결고리를 갖고 있으며, 교역상대국으로서도 최대의 시장 중 한 곳이지만, 2000년대만 해도 10%대의 경제성장률은 이루던 곳이 이젠 5%대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인구구조 역시 선진국형의 고령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일대일로(BRI) 정책을 펼치며 이 계획에 포함되는 100여 개국과 국제 기구 등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 경제가 ‘신창타이(뉴노멀)’ 시대로 진입하며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대일로의 장기적 비전은 ‘중국몽'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을 글로벌 사우스도 인지하고 있다.

중국에게 차관을 빌려 중국의 기업과 중국산 원자재로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국가 기반시설 등을 건설하고, 향후 차관을 갚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시설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야 하는 등, 종국에는 중국 경제를 활성화하는 ‘약탈적인 대출(predatory lending)’이란 비판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글로벌 사우스는 북반구 저위도·적도·남반구 지역의 130여 개 중·저소득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러시아·중국·유럽·동북아 강대국 등을 가리키는 글로벌 노스와 대비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이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처우는 국제 질서 속에서 변화해 왔다. 특히 과거 냉전시대 속에선 이들 글로벌 사우스의 일부가 비동맹 국가로 이념적 대외정책을 표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로 실리를 바탕으로 양쪽 진영에 선택적 협력을 추구하는 국가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인도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원유 거래에 나서는 등 경제적 교류를 지속하고 있으며, 국방 부문의 협력도 끈끈하다. 그러는 한편 미국 주도의 4개국 안보회담(QUAD),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에서다.

인도처럼 튀르키예·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지역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양 진영 사이서 중간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전망한 2075년 세계 경제 순위를 보면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10위권 안에 절반이 넘게 자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인도(2위)를 필두로, 인도네시아(4위)· 나이지리아(5위)·파키스탄(6위)·이집트(7위)·브라질(8위) 등이다. 멕시코(11위)나 필리핀(14위) 등도 미래 가능성이 점쳐지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다.

국제 질서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이들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내수시장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와 같은 입장에선 더더욱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관계유지'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의 김정한 선임연구위원은 “국제질서가 불안정해진 이 시기에 글로벌 사우스가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가 새로운 국제질서의 재편의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며 “공적개발원조, 금융협력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입지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대외개방을 통해 성장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해 왔지만, 이젠 글로벌 사우스의 중요성이 증대된 만큼 이들과의 협력연대를 더욱 강화하여 새롭게 대외경제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김 선임연구위원이 지목한 공적개발원조(ODA)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주요 협력 수단이다. 2022년 ODA는 28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국민총소득(GNI) 대비 0.17%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회원국으로 활동하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 30개국의 GNI 대비 ODA 비율은 평균 0.37%다.

박종훈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