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파생상품시장이 죽으면서 담당 애널리스트(이하 애널)도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증권사들이 전직을 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면서 윽박을 지르면서 파생 애널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뜩이나 합병과 인건비 절감 등의 이유로 증권사가 리서치센터 인력을 줄이고 있는 가운데, 돈이 안 되는 파생 분야 애널들은 더욱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합병하면서 리서치센터 규모를 대폭 축소한 대형 증권사 A는 파생 담당 B애널에게 계약만료 기간인 3월말까지 업종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협박을 가했다. B애널은 파생 쪽으로는 '1세대'에 속할 정도로 오랜 시간 업무를 담당해와 갑자기 전업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여의도 증권가 전경./사진=연합뉴스

B애널은 “파생시장이 죽으면서 다른 애널들도 이미 상장지수펀드(ETF)나 로보어드바이저쪽으로 전업했다”며 “자리가 없어지는 마당에 그간 업무를 지속해온 파생분야를 버릴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1세대 애널인 D증권사 C애널은 파생과 함께 로보어드바이저를 함께 담당하고 있다. 2세대에 속하는 E증권사 F애널은 이미 헤지펀드와 ETF쪽으로 전업했고 다른 증권사 애널들도 모두 업종을 바꾸거나 변경을 고민 중이다.
 
이처럼 파생 애널들이 수난을 겪고 있는 것은 파생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까지 거래량 기준으로 세계 1위를 고수했던 파생시장은 2012년 금융위원회가 코스피200 상품의 거래승수를 기존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인상하면서 개인투자자의 참여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지난해 주가지수 선물거래 하루 평균 계약금액은 17조110억원으로 최대치를 보인 2011년의 45조4,030억원보다 62.5% 급감했다. 한 때 파생시장에서 50%를 넘었던 개인투자자 비중은 최근 10%대를 기록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지난해 11월 금융위는 거래승수를 50만원에서 25만원까지 낮추겠다고 밝히고 3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파생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나 한국거래소 모두 개인이 파생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금융위가 발표한 ‘파생상품시장 경쟁력 제고 방안’ 역시 상장 절차 간소화 등 거래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은 꾸준히 들어 50%에 육박하고 있지만 파생 애널들이 영어로 보고서를 낼 역량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증권사들이 전업을 권할 수밖에 없는 것.
 
한 증권사 파생 담당 애널은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키움증권 같은 곳은 아예 파생 애널을 두고 있지 않다”며 “조선 업종 애널이 지고 바이오 애널이 각광을 받는 것처럼 파생시장도 부침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파생시장이 지나치게 위축된 측면이 있다”며 “개인은 물론 기관투자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증권사 파생담당 애널은 “증권사 등 기관투자자가 파생시장에서 수익률을 내기 어려워지자 차라리 시장수익률을 따라가는 ETF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며 “최근 리서치센터 몸집을 줄이려는 움직임에 파생 애널들이 더욱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형 증권사 파생 담당 애널은 “파생 시장이 죽으면서 주가연계증권(ELS), 상장지수증권(ETN) 등으로 담당 애널 외연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면서도 “A증권사의 전업과 퇴사 강요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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