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진영] 억울함이 없는 사회가 있을까. 영화 ‘재심’은 어느 사회에나 있을 억울함 가운데 아주 극적인 사건 하나를 풀어 보여 준다. 2000년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일어난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살인 누명을 쓰고 10대~20대를 감옥에서 보낸 소년 현우(강하늘)가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정우는 이 영화에서 현우를 돕는 변호사 이준영 역을 맡았다. 스토리만 보면 억울한 사연을 가진 소년을 돕는 선하기만 한 사람일 것으로 예상되나 실제 영화 속에서 준영은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이다. 크게 한 건 잡으려다 오히려 빚더미에 앉은 준영은 거대 로펌 대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선 무료 변론 봉사에서 현우의 사건을 알게 된다. 처음 준영이 이 사건을 맡기로 결정하는 이유는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다.

“이준영이라는 인물이 기존에 다른 작품들에서 봤던 변호사들과 다르더라고요. 변호사라는 건 말 그대로 준영이의 직업일 뿐이었고, 그 외에 가장으로서의 생활이나 소시민적이고 인간적인 면이 시나리오에 많이 부각돼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진데 약간 속물적인 느낌이 나잖아요. 작정하고 속물이 되려는 건 아닌데 약간 유머러스 하게 속물적인 기질을 보이는 거죠. 그런 속성들이 귀엽게 느껴졌어요.”

시나리오상 설정도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변호사는 아니었지만, 준영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정우다. 그간 영화 ‘바람’이나 ‘쎄씨봉’,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등에서 보여 줬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이번 ‘재심’에서도 빛을 발했다. 정우는 “준영이 처음에는 진지한 캐릭터였다”고 털어놨다.

“원래는 처음부터 쭉 진지한 느낌이었죠. 그런데 제가 캐스팅되고 난 후 감독님과 얘기를 하면서 ‘조금 더 밝게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소재 자체가 굉장히 무겁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무겁게 다가가면 관객들이 빨리 지치고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경쾌하고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다가가서 이슬비에 적셔가듯 젖어 들면 나중에 관객들이 캐릭터들의 감정에 공감을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감독도 제 말을 듣고 ‘그게 괜찮을 수 있겠다’고 해 주셔서 지금의 준영이란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어요.”

영화에서 현우와 준영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게 된다. 정우는 준영이 현우의 변론을 맡기로 하는 과정을 연기하면서도 계속 ‘현우가 진짜 범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믿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우는 ‘재심’에 대해 “사회의 일원인 한 사람이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는 또 다른 청년을 믿고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정우가 이 영화를 ‘고발 영화’라 부르지 않는 이유도 이것이다. 대신 ‘재심’을 ‘위로하는 영화’라고 칭했다. 실제 사건이 아직 다 마무리되진 않았지만 영화의 목적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있지 않다는 뜻이다.

“소재 자체가 무겁다 보니 오해를 하실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우리 영화는 고발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저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재심’이 하고 있다고 봐요. 준영과 현우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오는 감동의 메시지와 따뜻함을 관객들이 발견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 영화로 희망을 알리고 싶었어요. 단 너무 무겁지 않게요.”

사진=오퍼스 픽쳐스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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