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 Mr . 마켓 <111회> 글·김지훈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광장,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았다.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성당 광장은 커다란 해시계였다.

부활절 미사에 참가하는 로마 시민과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시간이 되자, 광장을 둘러싼 건물 옥상과 난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안젤로 교황이 미사를 집전했다.

“저의 눈과 다리를 가져가신 하느님께서 입을 남겨 주신 이유가 이거였군요.”

멋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운을 뗐다. 신자들은 그의 유머와 재치 그리고 신을 향한 경건한 ‘모습’에 열광했다. 영생을 얻은 안젤로 교황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늙어 꼬부라진 치매에 몸이 떨리는 노인이 아닌, 영생으로 찬란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갖춘, 새로운 교황. 교황의 모습은 신의 은혜를 연상케 했다. 그가 복음서를 높이 쳐들자, 사람들은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성스럽고도 기묘했다.

안젤로 교황은 템이 되기 전 순수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지만, 영생과 함께 그의 믿음은 사라졌다. 이제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에 대한 믿음은 시시하고 재미없다. 입술로는 능수능란하게 신을 찬양했지만, 진심으로 신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믿음은 하늘이 준 축복이었지만, 영생은 그 축복을 밀어냈다.

그는 자신을 우러러보며 복종하는 사람들에게서 짜릿함을 느꼈다. 수많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우월감이 그를 흥분시켰다.

이리엘 주교는 이사벨과 마킷을 ‘서명의 방’으로 안내했다. 벽과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가득했고 상아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의자는 물결처럼 부드러웠다. 돋음으로 새겨진 조각들은 살아 있는 듯 섬세했다. 마킷은 주변을 에워싼 작품에 몇 번이고 시선을 빼앗겼다.

“이곳의 그림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난 천재 화가 라파엘로의 작품들입니다.”

이리엘 주교는 투우사가 붉은 천을 휘두르듯이 팔을 펼쳐서 사방을 가리켰다. 자부심으로 가득 찬 동작이었다. 마킷은 그가 이사벨에게 돋보이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했다. 이사벨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다. 이사벨은 작품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리엘 주교가 나서서 작품들을 설명하려 할 때, 어린 사제가 교황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마킷과 이사벨은 일어선 자세로 휠체어에 앉은 안젤로 교황을 맞이했다. 안젤로 교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내가 너무 일찍 나타나서 감상을 방해하진 않았나?”

“전혀요.”

이사벨은 우아하게 답하며 교황의 반지에 입 맞췄다.

“……나와 같은 장님이군.”

교황은 이사벨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마킷이 있는 곳으로 얼굴로 돌렸다.

“곁에 계신 분은?”

“눈먼 자들의…… 왕이 되실 분이죠.”

그녀가 말했다. 교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손짓하자, 어린 사제와 이리엘 주교는 썰물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서명의 방에는 안젤로 교황과 이사벨 그리고 마킷뿐이었다.

“이곳은 교황 율리오 2세의 도서관이었지만, 라파엘로의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공개되었지.”

“라파엘로의 그림들이 책을 쫓아냈군요.”

이사벨이 대꾸했다.

“그런 식의 표현 …. 우리의 영혼은 쌍둥이처럼 닮았군.”

교황은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피 냄새를 맡은 늑대의 흥분된 표정, 이리엘과 사제들에겐 결코 보여 주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국스포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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